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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15:28


그의 서거 3주기인 오늘,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라 무력했던 '인권변호사/국회의원 노무현'이 더 그리워집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는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낍니다. "내 눈앞에서 노동자들이 맞고 끌려가도, 노점상들이 단속에 걸려 쫓겨나도 나에게는 여전히 그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예전에는 같이 맞고 끌려가면서도 마음의 죄스러움은 느끼지 않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박해 현장에 동참하는 떳떳함(?)마저도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박해받지 않는 사람,' 그건 정말 참기 어려운 또 하나의 고통이었다." 노동자와 함께 박해받는 인권변호사로 사는 것을 기뻐했고, 박해받지 않는 국회의원으로 사는 것을 괴로워했던 사람, 그 사실 하나 만으로 그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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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0 15:13


뒤늦게 홍형숙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 2]를 보았습니다. 2003년 당시 우리 사회의 광기에 대한 절망감과 송두율 선생님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을 재경험하느라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때의 안타까운 심경을 한 그리스도교 주간지에 글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망각의 담장 너머"). 당신을 망각하고 있지 않는 이들도 있음을 알려 드리려 그 글을 옥중에 계시던 선생님께 보내드렸고 답장을 받았던 기억도 나고요. 국가폭력만이 아니라 좌든 우든 집단주의 폭력의 야만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던 사건이었습니다. 송두율 선생님은 옥중에서도 그리고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간 후에도 치열한 성찰의 노동을 멈추지 않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너무 빨리 망각을 선택했지요. 너무 늦기 전에 송두율 선생님을 한국에 다시 모시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함으로써 선생님의 '미완의 귀향'을 완성시켜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의 고향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고향을 찾았던 나의 뱃길은 세찬 풍랑을 맞아 닻을 온전히 내리지도 못했다. 그 사실이 넓은 지중해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 한편을 조였다. 나는 아직 귀향하지 못했다." 송두율,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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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9 15:46

어제 졸업식에서 졸업생도 아닌데 상을 하나 받았습니다. 연구 업적이 뛰어난 신학 분야 박사과정 학생에게 주는 다니엘 데이 윌리엄스 상입니다. 2년 전에도 그 상을 받았으니 같은 상을 두 번 받은 셈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외부에서 주는 논문상을 탔고, 학회 발표 두 번, 학술지 논문 두 편, 단행본 논문 하나를 썼으니 나름 열심히 연구한 건 사실이지만, 기쁘기 보다는 마음이 복잡합니다. 여전히 낮은 자존감에 시달리는 외국인 학생이라, "봐, 나 바보 아니야,"^^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백인들의 사회에서 '가시적 존재'가 되는 게 영 불안하기도 하고, 또 동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인정을 받아도 불편하고 불안하기만 한 이 마음은 도대체 뭘까요? '타자'의 존재적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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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7 11:04



광주, 내 유년의 도시. 

내 삶을 바꿔 놓은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너무 부끄럽고 미안한 

2012년 5월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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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00:02


The Japan Mission Journal 2012년 봄호에 "자비로움과 맞섬 Compassion and Confrontation"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하나 기고했습니다. 책으로 직접 받으니 느낌이 묘하네요. 글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 삶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고요. 이 논문의 핵심은 '자비로움'과 '맞섬'을 상호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고민하며 씨름하고 있는 주제를 담고 있는 몇 문단을 옮겨 봅니다.

"The opposite of compassion is not confrontation but indifference to the suffering of people and inaction against injustice. If my compassion for victimizers weakens my confrontation against them, I believe, my compassion for them will also be weakened. 자비로움의 반대는 맞섬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불의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가해자에 대한 나의 자비가 그들에 맞서는 것을 약화시킨다면, 그들에 대한 나의 자비 또한 약화될 것이다."

"John Makransky in a Compassion Meditation retreat at Union Theological Seminary pointed out that social activists are 'fighting against' oppressors not 'fighting for' the deep humanity in the oppressors. His point was that, though both are essential, fighting for 'deep humanity' must be fundamental. I agree with him because I believe in the basic human goodness, which Buddhists call Buddhanature and Christians call Imago Dei. Yes, the goal of our confrontation should be to manifest our human goodness. But I also believe, I have to believe, that not only fighting for 'deep humanity' but also fighting against 'dehumanization' is fundamental for liberation.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있었던 자비명상 수련회에서 존 매크란스키는 사회운동가들은 억압자들에 '맞서 against' 싸우지만 억압자 안의 깊은 인간성을 '위해 for' 싸우지 않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억압자들에 맞서는 투쟁과 억압자들의 인간성을 드러내기 위한 투쟁 모두 중요하지만 결국에는 후자가 더 근본적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불자들이 불성이라 부르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형상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근본적 선함을 믿는다. 우리가 억압자들에 맞서는 목적은 우리 모두의 근본적 선함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깊은 인간성 deep humanity'을 드러내기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비인간화 dehumanization'에 맞서는 투쟁 역시 해방에 본질적이라고 믿는다."

"I want to (and should) get angry with injustice. But, as soon as my anger arises, I want to be aware of it, recognize it, and harness it through mindfulness practice, without losing its energy, so that the anger would not be led into hatred and violence. I’m convinced that mindfulness practice will give me power and wisdom to find a better way to be compassionate and confrontational at the same time. Such compassion will be strong, and such confrontation will be soft. 나는 불의에 분노하길 원한다. 아니, 분노해야 한다. 하지만 분노가 일어나자마자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다스리길 원한다. 그것은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마음챙김 수행은 분노의 에너지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그 분노가 증오와 폭력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준다. 마음챙김 수행은 자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단호하게 불의에 맞설 수 있는 길을 찾을 힘과 지혜를 줄 것이다. 그런 자비는 강할 것이고, 그런 맞섬은 부드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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