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hgaya
(2000년 2월 1일)
<짜이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를 향해 떠났다. 보드가야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 차를 멈추고 잠시 쉬었다. 아직 이른 시간, 아침 그림자 길게 누운 시골 마을이 상쾌하다. 그런데, 헝클어진 머리를 한 삐쩍 마른 여자아이 둘이 손을 벌리며 나를 올려다본다. 마침 주머니에 있던 땅콩 한 봉지를 꺼내 두 아이에게 주며 나눠 먹으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아이가 내 손끝이 아리도록 그것을 낚아채 달아나고 동작이 늦었던 아이는 더 애걸하며 매달린다. 내 탓이다. 애초에 나눠줬어야지... 결국 땅콩을 못 받은 아이에게 대신 사탕을 주는 것으로 미안함을 달랜다.
비하르 주의 도로상태는 최악이다. 이곳에 비하면 지나왔던 U.P의 도로는 양호한 편이었다. 여기 도로는 마치 자갈밭을 달리는 듯 쉼없이 덜컹거린다. 인도에서 관리들의 부패가 가장 심하다는 주 답게 부패한 제도의 결과가 길에도 나타난다.
Mahabodhi Temple
<마하보디 템플>
보드가야에 도착하자마자, 마하보디 템플로 향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던 곳에 세워졌다는 마하보디 템플은 높이 52미터의 큰 스투파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스투파와 승원, 연못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사원에는 불교의 최고성지답게 티벳 승려들을 비롯 수많은 순례자들이 있었다. 티벳 승려들은 나무 판을 바닥에 깔고 그 위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반질반질한 나무판과 그들의 익숙한 몸짓이 잘 어울린다. 서양인들도 한쪽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모든 게 매혹적이다.
중심에 있는 스투파는 원래 기원전 3세기 경 아쇼카왕이 세운 것인데 11세기와 18세기 말에 각각 증축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적석(積石) 형태로 쌓은 것이어서 주변에 지진이 있었어도 허물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보존되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작은 불전이 있는데 그리 넓지 않은 내실에 금빛 붓다가 화려한 가사를 걸친 채 앉아 있다. 반짝거리는 빛을 내며 돌아가는 꼬마전등의 후광이 재미있다. 이런 화려함은 티벳 불교의 영향 때문이다. 나는 금빛 붓다의 모습에서 여전히 부담을 느낀다.
템플 뒤에는 金剛座가 놓여 있고 그 위로 커다란 보리수가 자라고 있었다. 아쇼카는 보드가야의 보리수 묘목을 스리랑카로 보냈는데 보드가야의 보리수가 수명을 다하자 스리랑카에서 다시 묘목을 옮겨와 현재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 깨달음의 유전자... 이 보리수가 붓다의 깨달음을 목격한 그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잠시나마 그 아래 앉아 영혼의 고요를 누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금강좌>
금강좌 위에 앉아 명상을 한다. 반짝이는 금박도 원색적 화려함으로 치장된 티벳풍의 천도 다 사라지고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자유만이 조용히 솟아난다. 모처럼 無心의 흐름에 놓이니 즐겁고 편안하다. 가끔 모기가 물어 따가움도 싫지 않다. 한 없이 머물고 싶었다.
그 옛날 기나긴 고행에서도 깨달음을 얻지 못한 고타마 싯달타는 지친 몸으로 이곳을 찾아왔다. 그는 한 보리수 나무 아래 앉아 깨닫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을 각오로 명상을 했다. 그동안의 실패의 원인을 명상하던 중 번뇌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은 욕망 때문임을 자각했다. 이제 욕망을 끊기 위한 원인일 알고자 했다. 그러자 훼방자, 죽음과 욕망의 신 Mara가 나타났다. 그는 한없는 쾌락과 가공할 공포로 고타마를 에워싸 위협했지만 싯달타는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오른손 손가락을 땅에 대자 대지가 엄청난 괴성을 터트렸고, 이에 놀란 마라는 도망가 버렸다. 마침내 싯달타는 無上正覺을 이루었다. 붓다가 된 것이다. 욕망은 결국 십이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욕망을 끊은 고타마는 깨달음의 경지에 들었고, 그 경지는 네 단계의 열락으로 충만하여 마지막에는 만족도 불만도 모르는 지극히 청정한 평정 상태에 이르렀다. 무명, 무지가 사라지고 더 이상 추구할 것 없는 경지에 도달하여 싯달타는 현세에 처한 채로 열반을 맛보았다. 그러나 아직 최후의 유혹이 남아 있었다. 진리, 즉 다르마를 설하여도 다른 사람이 알아 들을 수 없다면 헛수고가 아닌가? 독각(홀로 깨달음)에 머물러 업을 소멸한 후 죽어 니르바나에 들 것인가? 아니면 니르바나에 드는 것을 연기하고 만인을 위한 붓다가 될 것인가?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붓다는 구원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속세로 돌아가기로 했고, 먼저 자신을 버렸던 다섯 고행자들을 찾아 바라나시 인근 사르나타로 향했던 것이다.
마하보디 템플 왼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King of Snakes'를 굴복시켰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하지만 연못의 물은 시커먼 색으로 무겁게 고여 있고, 그 탁함 위로 외롭게 연꽃 몇이 피어 있었다. 끈끈하고 질척거리는 물 밑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그 줄기 끝 수면 위로는 아름답고 찬란한 꽃을 피우는 연은, 그렇게 眞如와 生滅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마하보디 템플을 나와 인근에 있는 한국 사찰 [고려사]를 방문했다. 차에서 내려 들판을 걷는데 두통을 일으키는 악취가 괴롭힌다. 근처에 끔찍한 시궁창이라도 있는지 몸에 달라붙을 것 같은 냄새를 떨구기 위해 급히 걸었다. 잠시 후 단층의 아담한 절이 나타났다. 고려사는 한국인 스님 몇 분이 있는 사원으로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였다. 왜 구태여 한국인들의 절이 이곳에 있어야만 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커다란 열망이 있어서 이 먼 곳까지 오셨겠지.
이름만큼 편안하고 아담한 호텔 Sujata. 붓다로 하여금 힘을 내게 했던 우유 한잔의 전설처럼 마음 풀어놓고 하룻밤을 쉬기로 한다.
툭툭, 투두둑...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오신다. 반가움. 메마른 대지를 부드럽게 적시고 나그네의 굳은 몸을 위로하는 비. 그러나 금새 비는 거둬지고 보드가야의 마른 밤은 깊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