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종교적 인간탐구 (519)
사색 (340)
사진 (63)
공동체/인터뷰/토론 (17)
말씀새김 (6)
칼럼 (39)
여행 (30)
기도 (17)
음악 (7)
공부 (0)


rss
tistory
2010/01/01 03:28

Amritsar
(2000년 2월 5일)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펀잡의 행정 수도인 암리차르에 도착했다. 도시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여기가 인도인가?

Golden Temple

15세기 Nanak은 신이 준 감로주를 받아 마시고 "힌두라는 것도, 무슬림이라는 것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의 신비체험에 기초해 창시된 씨크교는 유일신관에서는 이슬람과 일치하며, 박티의 성격은 힌두교와 비슷한 일종의 종합주의적 종교이다. 황금사원은 이 씨크교의 중심 사원이다.





사원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 맡겨놓고 머리를 두르는 천조각 하나를 샀다. 그리고 발을 씻고 사원에 들어갔다.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독특하게도, 문을 지나면 아래로 내려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원이 바깥 거리보다 낮은 곳에 위치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 겸손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도들은 사원에 들어가면서 자기를 낮추고 신을 섬기는 마음을 다듬는다. 그리고 사방으로 나 있는 문은 종교적 개방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원 안에는 흰 대리석 회랑에 둘러싸인 커다란 사각형의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 연못 가운데에는 화려한 황금사원 Hari Mandir가 빛나고 있다. 마침 의례일이라 수많은 씨크 교도들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며 황금사원을 참배하고 있었다. 목욕은 연못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된 돌계단에서 하는데 그 이름이 '신의 계단'이다.





무료식당 'Lancar.' 원하는 모든 이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메뉴는 간단하다. 수프와 짜파티. 주방에서는 씨크 교도들이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이런 Lancar는 크든 작든 모든 시크 사원에 있다.

식당을 나와 황금사원으로 향했다. 줄지어 선 이들이 무척 많았지만,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황금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황금사원은 람다스의 아들이자 씨크교의 5대 구루인 Arjan Dev가 세웠고, 1802년 Maharaja Ranjit Singh이 400kg의 황금으로 지붕과 대리석을 칠했다. 사원 안에서는 한 지도자가 성스러운 경전 '그란트'를 읽고 있었다. 사실 씨크교는 그 성스러운 경전을 인격화해서 숭배한다. 황금사원에서 나오는 통로에서는 사제들이 모든 참배객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씨크 의회당


사원 옆에는 1984년 폭력의 현장인 씨크 의회당이 있다. 폭격으로 파괴된 의회당을 사태수습 차원에서 중앙정부가 재건해주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아서 씨크 교도들이 새로 개축한 것이다.

당시의 충돌에 대해 힌두 지배세력과 씨크들은 전혀 달리 해석한다. 힌두들은 씨크 분리주의자들의 난동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씨크들은 인디라 간디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즉 당시 씨크의 급진적 분리주의운동 지도자인 Jarnail Singh Bhindranwala조차 협상을 원하고 있었는데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인디라 간디의 정략으로 무리한 공격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빈드란왈라는 공격을 받아 사망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씨크 교도 경호원이 인디라 간디를 암살했다. 그러자 격분한 힌두들이 전국적으로 3만 명의 씨크 교도들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치가 문제다.

 

의회당 건물 옆에 주황색 천으로 싸인 높은 창 모양의 두 기둥이 있는데, 거기에서 휘날리는 두 깃발은 정치적 힘과 종교적 힘을 상징한다.  

암리차르 시내

 

  

Jallianwala Bagh National Memorial

이곳은 1919년 4월 13일 영국군의 무차별 발표로 무려 379명의 인도 민간인들이 학살된 비극의 현장이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남녀 및 어린이들이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Martyr's Well. 총탄을 피해 사람들은 이 우물에 뛰어들었다. 그 우물에서만 120명이 죽었다. 이 학살은 인도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간디의 불복종운동을 촉발시켰다.


 

공원 안 기념 조형물에는 "Service to humanity is true service to God"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다른 말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신을 죽이는 것이다.

Lakshmina Temple


정인재, 길희성 선생님과


이 사원은 Golden Temple을 모방했는지, 사각형의 호수 안에 사원이 위치해 있다. 씨크교와의 경쟁심 때문일까?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문의 힌두 여신들의 조각이 아름다웠다. 안에서는 타악기를 두드리며 소박한 의례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힌두 신이 주는 음식을 받아 먹었다.

Durga Temple

락슈미나 사원 옆 두르가 사원은 아담하지만 매우 활동적인 사원이다. 낮은 키의 두르가 신상 뒤편에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는 여성들의 발걸음이 지금도 잦다고 한다. 어디서나 아들, 아들... 인도에서는 하루 3000명씩의 여아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Hanuman Temple

이곳은 라마가 다녀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매우 오래된 사원이다. 그 전설을 반증하듯 라마의 말을 묶어 두었다는 커다란 나무가 신성시되고 있다. 어린 하누만 신상이 있다고 해서 골방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어두워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India-Parkistan Border의 국기하강식




양국 국경을 사이에 놓고 많은 관광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기 하강식이 진행되었다. 발을 높이 들었다 땅을 쾅쾅 치며 내리는 과장된 몸짓과 커다란 목소리, 연이어 터져나오는 양국 국민과 여행자들의 박수소리, 한마디로 'Border show'다.


정인재 선생님과

인도에서의 마지막 밤

내일이면 인도를 떠난다. 인도에서 나는 행복했다. 안녕, 인도!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