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간사)
행복하지만 좁은 길
공동체를 일구어 가는 이들의 삶은 행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끝없는 욕망의 구조에 맞서 세상의 편리를 포기하고 자발적 가난을 택하는 것은 넓고 편한 길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하다. 신과 인간, 자연의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가기에.
여름이 끝나갈 무렵, 좁은 길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며 걷는 사랑방공동체를 방문하기로 했다. 공동체의 정태일 목사는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 공동체인데 꼭 취재하러 와야겠어요?”라며 사양했지만, 이들의 삶에는 넓고 편한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없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었다.
‘대안’이 아니라 본질을 회복하는 공동체
‘대안학교’, ‘대안언론’, ‘대안공동체’ 등 ‘대안’이라는 형용사적 단어가 앞에 붙으면 기존질서에 대한 도전과 혁신의 의미가 생긴다. 하지만 대안적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기존질서에 대한 반발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초대교회, 갈릴리 예수 공동체로 돌아가려는 바람이 그것이다. 그래서 사랑방공동체는 스스로를 대안이라기보다는 “본질의 회복을 추구하는 공동체”라고 표현한다. 사랑방공동체가 회복하려는 교회의 본질은 코이노니아다. 이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새로운 대안처럼 보이는 건 그만큼 현실 교회들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때문일까.
사랑방공동체는 본질의 회복을 위해 ‘감격 있는 공동체 생활, 교육목회의 실현, 선교적인 삶’을 목표로 1984년 4월 29일에 설립되었다. 그후 햇수로 18년 동안 공동체의 신학적, 조직적 토대를 형성했고, 1997년에 경기도 포천 무림리의 넉넉한 자연 속에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무림리로 터를 옮긴 이유는 자연 속에서 더불어 안식하며 생명운동에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모나지 않게 위치한 공동체의 건물은 자연과 조화하려는 의도를 잘 살려주고 있다. 멀리서 보면 있는 듯 없는 듯 낮고 소박하다. 지붕 물매를 우리 옛 건축에서 가장 많이 쓰는 십 분의 사로 하여, 어디에서 보든 주변 산세와 어긋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예배당 뒷편은 자연을 가득 담아 들이는 넓은 창으로 되어 있고 건물 외벽은 사계절에 모두 잘 어울리는 흰색으로 칠했다. 공간이 사상을 담아낸다고 할 때 사랑방공동체의 터전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상징한다.
흐름이 자연스러운 공동체
공동체가 실패하는 것은 사상적 미숙과 무리한 외적 확대로 인한 힘의 소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사랑방공동체는 두 가지 문제점을 느리지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극복해왔다.
사랑방공동체의 사람들이 지도자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비전을 세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길고 힘든 과정이 필요했다. 정 목사는 “처음에는 4년 정도면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8년이 지나서야 의식이 같아지고, 12년이 지나니 행동이 같아질 수 있었어요” 라고 회고한다. 이렇게 의식과 행동을 공동체적으로 변화시키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랑방성서모임’이었다.
이 모임의 핵심원리는 지도자가 일방적으로 결론을 제시하는 연역적 방식 대신 평신도 스스로의 삶에서 성서의 뜻을 발견하는 귀납적 성서연구였다. 교인들은 매일 같은 성서본문을 묵상한 후 귀납적 방식으로 성서일기를 기록했고, 매주 금요일 사랑방모임에서 그 느낌을 함께 나누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성서가 나타내는 신자의 삶이 코이노니아임을 자각함으로써 공동체를 일구는 일에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신앙적 깊이를 더하는 내향성과 사회적 실천의 외향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지만, 현실 역량의 한계 때문에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기 쉽다. 사랑방공동체는 이를 흘러 넘치는 과정으로 조화시켰다. 조급하게 외적 활동에 치중하기보다는 내적 성숙의 결과가 흘러 넘쳐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게 되는 길을 택했다.
그동안 공동체는 의식과 행동을 같이 하기 위한 내적 성숙에 주력함으로써 기본적 틀을 갖추었고, 이제는 외적 활동을 무리 없이 진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각 사랑방성서모임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작업, 복지시설 봉사 등을 실천과제로 삼고 있고, 공동체 차원에서도 사회교육위원회를 구성해 공동체의 코이노니아를 사회로 넓히고 있다.
함께 사는 경험
크산티페가 악처라는 전설이 사실이라면 당대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한 셈이다. 느닷없이 그의 불행한 가정사를 떠올린 까닭은 그만큼 함께 살아감이 쉽지 않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는 이들과는 예의와 상냥함으로 관계를 지속하기 쉽지만, 정작 가까운 이들을 소홀히 대하는 경우가 많고, 마음의 상처 역시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주고받기 마련이다.
사랑방공동체 역시 함께 살아감의 어려움을 경험했다.〈꾸러기학교〉이월영 교장은 ‘사랑방 디아코니아회’의 공동생활에서 겪은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오랫동안 함께 삶을 나누었던 지체였기에 나의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던 부분들이 각자의 내적인 문제, 일상적인 일과 부딪히면서 하나 둘 상처로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그 때부터 겸손하게 공동생활의 기초가 되는 과정으로,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힘든 부분을 이해해주기 위해 많은 대화를 가졌던 기억이 나요”
이런 어려움은 참된 공동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통과의례였다. 차이를 인정하는 상호존중의 관계를 만들어감으로써 형식적 예의와 계약으로 지탱되는 얕은 인간관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정태일 목사 부부를 비롯하여 몇 교인 가정이 상주하고 있는〈사랑방 디아코니아회〉의 생활 원칙은 공동생산에 기초한 자립이다. 하지만 출판사업에서 약간의 수입을 얻을 뿐 아직 농사라든지 다른 수입 여건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교회재정에서 목적헌금을 받아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다. 이렇게 받은 생활비는 각 가정별로 균등하게 나누고, 목돈이 필요할 때는 교회에서 지원해준다. 이 공동생활체의 경험은 사랑방공동체의 이상을 구현하는 실험이므로 모든 교인들이 각별한 관심으로 지원하고 있다.
함께 사는 경험은 디아코니아회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교인들은 금요일 저녁 사랑방성서모임의 성서연구와 교제를 나눈다. 한 해의 전반기에는 함께 여행하고 후반기에는 평가모임을 갖는다. 공동체에 구역이나, 성가대, 교회학교, 남․여 선교회 같은 조직이 없는 대신, 이 사랑방모임이 지역별, 연령별, 과정별, 과제별로 특화되어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서 역할하고 있다.
함께 사는 경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말 그대로의 공동예배다. 사랑방공동체는 연령별 예배를 따로 드리지 않고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의 교인이 함께 예배드린다. 어릴 때부터 공동예배에 익숙해진 어린이들은 조용히 참여한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어른이 전하는 메시지도 이해하는 걸까? 정 목사는 말한다.
“어른처럼 체계적 논리적으로는 아니지만 설교의 중심을 이해합니다. 또한 교육적으로 볼 때도 예배의 ‘말’보다는 분위기나 흐름을 포함하는 예배 경험에서 더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사는 분위기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공동체의 주체로서 미래를 설계하는 역할도 잘 감당한다. 지난 해 여름 공동체생활 때에는 어린이들에게도 공동체의 미래를 청사진으로 그려보게 했는데 어른들이 만든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사랑방공동체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태도도 함께 사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처럼 내부적 공동체성이 강하다 보면 처음 찾아온 사람들이 담을 느껴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랑방공동체에는 타자를 수용하고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처음 온 이도 ‘주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 그래서 공동체를 방문했다가 그냥 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무림리로 옮긴 뒤 교인 숫자가 오히려 두 배나 늘어 현재는 250명 정도가 함께 예배드린다. 예배가 끝나면 공동식사, 찬양모임, 체육활동, 텃밭 가꾸기 등이 이어지면서 하루 동안의 공동생활을 맘껏 누린다.
공동생활은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이다. 함께 살 수 있다는 건 이기적 욕망과 독단을 지양하며 동료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자기초월의 현실을 보여준다. 각자의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조화로운 삶을 몸으로 익혀 가는 사랑방공동체는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게 만든다.
교육공동체로서의 사명
공동체의 사회교육위원회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교육공동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그중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꾸러기학교〉는 대안교육의 한 모델로 널리 알려졌다. 이 학교는 어린이들이 공동체성과 창의성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는 교육원리에 기초한다. 교사들은 지식을 주입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대화적 관계 속에 학생의 발전을 돕는 도우미로 역할한다.
〈푸른꿈 주말학교〉와〈계절학교〉는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1박하며 4주간 진행되는 주말학교, 방학중에 진행하는 4박 5일 일정의 계절학교는 함께 먹고 자면서 공동체적 관계 형성 능력을 배우도록 돕고 있다.
청년들이 공동체의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교육하는 ‘TK2000(Toward Koinonia 2000)’ 운동은 ‘젊은이 자연예배’, ‘청년 TK2000 훈련’, ‘국내외 공동체탐방’ 등의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홉명의 청년이 프랑스 떼제 공동체와 독일 부르더호프 공동체를 방문하고 있었다. 공동체의 중심으로 성장해가는 청년들이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교회는 경비의 반을 지원했다.
성인들을 위해서는 자기발견, 문화프로그램, 주제별 강의 등으로 짜여진〈자연 속 주민 배움사랑방〉을 운영하고 있고, 부설기관인 〈한국교회지도력훈련원〉은 교역자, 신학생, 평신도를 대상으로 공동체 지도자훈련, 사랑방 부부모임, 공동체성서연구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스스로를 개혁하는 공동체
사랑방공동체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평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항존직 시무자의 신임을 묻는 투표를 규정한 공동체의 아홉 번째〈약속〉은 담임목사는 6년, 장로, 집사, 권사는 4년마다 공동의회에서 신임투표를 실시하여 삼분의 이 이상 득표하지 못할 경우 목사는 1년 내에 사임하고, 장로, 집사, 권사는 4년 간 휴무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약속은 제도적 권위에 의존하거나 신앙적 독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며, 진정한 공동체적 인격과 신앙의 깊이에서 나오는 영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깊은 신앙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더불어 살아가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랑방공동체는 뭔가 특별한 것을 계속 창조해갈 것 같다.
계간 [새길] 2호(2001 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