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ore
(2월 6일)
아침, 국경 통로가 열리기를 한참 기다린다. 인도를 떠나는 서운함과 파키스탄을 만나는 설레임...
<국경 옆 밑밭에서>
드디어 암리차르를 떠나 파키스탄으로 들어왔다. 국경을 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파키스탄에 들어와서도 입국수속이 간단하지 않아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국경을 넘으며, (좌) 영은, 녹인, 영라, 나, 오은>
대기실, 먼지 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나무의자에 조용히 누웠다. 기분좋게 몸을 자극하는 한기를 느끼며 나무 의자에 앉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엉성한 국경을 사이에 놓고 두 나라는 어떻게 서로 관계맺고 있는 걸까?
간디가 기대했던 '하나의 인도'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분리 독립으로 좌절되었다. 그후 힌두, 이슬람 민족주의와 대결로 인한 분쟁이 지금껏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주요한 강들의 발원지인 카슈미르 지역의 분쟁을 둘러싼 양국간의 갈등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 지역으로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 갈등이 사라지고, 종교와 민족주의의 긴장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 그 두 긴장 요소를 모두 갖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은 더욱 위험해 보인다.
드디어, 수속을 마치고 라호르로 들어가는 버스에 올랐다. 잘 닦인 도로, 상대적으로 더 깨끗해보이는 거리와 사람들.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히는 나라임에도, 인도보다 훨씬 더 안정되어 보인다. 군사문화 때문일까?
Shalimar Garden
<샬리마르 가든>
라호르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샬리마르 가든을 방문했다. 이곳은 전형적인 무굴양식의 정원으로 샤자한이 1642년에 조성한 유적지이다. 모든 건물과 분수대는 희고 화려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기하학적으로 배치된 연못과 수로의 균형미가 아름답다. 정원 안의 분수는 자그마치 400개.
Lahore Museum
1864년에 세워진, 파키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다. 전시실은 모두 여덟개로, 간다라의 불교미술과 인더스 유역의 출토물,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 그리고 각지의 민속의상과 무굴 제국의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박물관에 올 때, 가장 만나고 싶었던 것은 "Fasting Buddha"였다. 단식의 고행은 아직 깨달음 이전이므로 원래 명칭은 "Fasting Siddartha"가 맞겠지. 그를 만나고 싶어 이 긴 여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리 진열장 안에 단식중인 싯달타가 있었다. 쾽하니 들어간 눈, 튀어 나온 광대뼈, 움푹 들어간 복부, 뼈와 가죽만 남은 야윈 몸... 붓다는 목숨 건 고행이 부질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중도를 걸었는데, 나는 왜 이리도 싯달타의 고행에 매료되는 걸까?
Lahore Fort
점심을 먹고 라호르 성으로 향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거대한 Badshahi Masjid를 마주하며 서 있는 이 성은 동서 424m, 남북 340m 규모로, 1566년 무굴제국의 황제 악바르가 세운 건축물이다.
악바르. 종교들의 공존을 위해 애썼던 왕. 그는 힌두 사원 파괴를 금지시켰고, 비무슬림들에 대한 차별적 조세제도인 '지즈야'도 폐지했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오후, 이슬람을 비롯 힌두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등의 학자들을 모아 일종의 종교토론회를 열었다. 이런 지적, 영적, 학문적 토론의 결과로 1582년, 그의 나이 40세에 '딘일라히'라는 소박한 일신교를 창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이 공존의 실험은 미완으로 끝나고 만다.
Alamgiri Gate를 지나 언덕길을 조금 오르니 먼저 아담한 규모의 이슬람 사원 Moti Masjid가 나타났다. 이 모스크는 샤자한이 1644년에 궁전의 여성들과 왕족을 위해 세운 건축물이다.
성 안쪽으로 들어가면 샤자한의 탐미적 취향이 반영된 유적들을 볼 수 있다. 아버지 제한기르의 정원, 거울의 궁전, 90만개의 보석으로 수놓은 나울라카의 방, 은으로 만든 문 등 사치스러운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보존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다행히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복원작업이 곳곳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다.
<거울 궁전 내부>
거울의 궁전 역시 복원중이라 출입할 수 없었지만, 가이드의 노력으로 둘러 볼 수 있었다. 먼지 낀 거울에 반사되는 햇빛이 참 곱고 평화롭다.
성을 돌아보는 내내 파키스탄 젊은 남자들이 소란스럽게 따라다녔다. 처음엔 '호기심' 때문이려니 하며 웃어넘겼는데, 점점 짖궃은 행동이 더 심해져 불쾌했다. 씁쓸...
남자들이 문제다. 현재도 파키스탄에서는 매년 '가문의 명예'라는 이름 아래 수백명의 여성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곳 여성들은 부정한 행실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집안의 뜻을 어기고 자신이 선택한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혹은 폭력적 남편과 이혼하려 했다는 이유로, 남편과 형제, 가족들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도 비일비재하다. 강간에 관련된 하두드 법에 따르면 강간을 증명하려면 4명의 성인 '남성' 목격자가 있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피해자는 오히려 간음으로 고소당한다. 그래서 해마다 강간당한 수천명의 여성들이 간음죄로 투옥되어 공판을 기다린다.
Badshahi Masjid
<바드샤히 모스크 앞에서>
1674년에 아우랑제브가 건축한 이 모스크는 이슬라마바드에 파아살 모스크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파키스탄 최대의 모스크였다. 건물 내부에 1만명, 안뜰에 9만명을 수용할 수 있으니 대단한 규모다. 웅장한 백색 돔과 붉은 샌드스톤 벽이 좌우대칭을 절묘하게 이루며 웅장함을 더한다.
Jehangir Tomb
해질 무렵, Ravi 강을 건너 Jehangir의 무덤을 찾았다. 수 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음산하게 하늘을 날고, 이미 내려앉은 어둠속에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쓰레기들... 공포영화의 촬영장을 보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건축 양식이 돋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 무덤은 제한기르의 미망인인 Nur Jahan 왕비가 설계한 대로 아들 샤자한이 건축한 것이다. 샤자한은 어머니로부터 미적 감각을 아버지로부터는 향락의 근성을 물려받은 것 같다.
제한기르. "악마 같은 기질과, 인간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상냥함을 아울러 갖추고 있었다"는 황제. 그는 페르시아 귀족의 딸 누르 자한을 왕비로 맞이했는데, 제한기르에 대한 누르 자한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그는 늘 "한 잔의 술과 두세 입의 음식을 위해 그녀에게 나라를 양도했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따라서 화려하고 사치스런 페르시아 문화가 인도로 유입되어 향락 풍조가 자리잡게 된 것이고, 그것을 꽃피운(?) 이가 아들 샤자한이었다.
<제한기르의 관>
보통 황제들의 관에는 가까이 갈 수가 없는데 제한기르의 관에는 직접 다가가서 보고 만질 수 있었다. 아직도 빛을 잃지 않는 흰 대리석에 색색의 돌이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안에 고집스럽고, 낭만적이고, 다정하고, 잔인한 다중인격자가 누워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