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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09:16

 

 

Mohenjodaro

(2월 8일,9일)

 

 

파키스탄 최남단의 구 수도 카라치로 가기 위해 라왈핀디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모헨조다로를 가려면 일단 카라치로 가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헨조다로... 꿈처럼 아득한 그 고대도시에 간다.

 

라왈핀디 공항은 국내선 이동인데도 검문검색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파키스탄 비행기의 여승무원들은 하나같이 다부진 체격의 튼튼한 여성들이다.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 여승무원들은 늘 날씬한 몸매의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이 더 이상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카라치다.

 

카라치. 과거 파키스탄의 수도였고 지금도 상당히 활발한 도시라고 하여 시내를 잠간이라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모헨조다로로 가는 항공편 시간이 촉박해 할 수 없이 공항에 머물러야 했다. 공항 내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모헨조다로를 향해 날아갔다. 짧은 비행끝에 모헨조다로 공항에 착륙한 때는 어느새 늦은 오후였다.

 

아주 작은 규모의 공항. 이런 공항은 '간이공항'이라고 해야 하나? 오직 모헨조다로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공항이다. 아득한 역사의 흔적을 찾아 전 세계에서 사람이 몰려온다. 사라진 문명이라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신비한 모헨조다로.

 

민가 하나 없는 공항 주변으로는 푸석푸석 말라 있는 붉은 대지가 펼쳐져 있다. 하늘 빛도 흙 빛을 닮아 스산하다.

 

숙소는 공항 옆 파키스탄 국영 모텔이다. 모헨조다로 유적 가까이에 있는 이 모텔은 단층의 아담한 건물로, 작은 시골마을의 여관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다. 여행객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대학 시절 모꼬지를 떠나온 듯한 느낌.

 

모텔 옆 공항수비대의 숙소를 방문했다. 군인들은 우리를 환영해주었고, 숙소 옆 작은 모스크에도 초대해 자신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는 파키스탄 군인들>


한 군인이 키볼라 앞에서 메카를 향해 반복해서 절을 했다. 절 하는 방식은 코가 땅에 닿도록 깊이 몸을 숙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엉덩이는 하늘로 향하는 민망한 포즈가 만들어진다. 신 앞에 자신을 가장 낮추는 겸손을 몸으로 표현하는 거다. 신 앞에서조차도 폼잡으려는 엄숙주의는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한 거다.

 

모텔 옥상에 올라가니 사방이 잘 보였다. 뒤로는 모헨조다로 유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앞에는 끝없는 황무지다. 옥상에 올라가 둘러앉은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이런저런 여행의 느낌을 나누었다. 즐거웠다.

 

모헨조다로 유적

 

2월 9일 아침. 드디어 4,500여년의 길고 아득한 시간을 건너 모헨조다로 유적지로 향했다. 사라져버린 문명, 그 흔적을 마주하며 인간의 역사를 명상해보려는 것이다. 모헨조다로, '죽음의 언덕'이라는 서늘한 이름이지만 내게는 '꿈의 언덕'이다.

 

먼저 모헨조다로 박물관을 방문했다. 아담하고 멋진 3층 건물이다. 돌인장, 소, 달구지 모양의 테라코타 조각, 그리고 무늬도자기와 민무늬도자기 등 여러 가지 장식품과 그림, 사진이 잘 전시되어 있다. 3층에는 과거 모헨조다로 도시를 재현한 커다란 그림이 있는데, 당시 상당한 규모의 활력있는 도시였음을 잘 보여준다. 작은 인장 중에는 요가 포지션의 신상도 볼 수 있다. 풍요의 신인데, 후에 힌두교의 쉬바신이 되었다는 가설도 있다.

 

드디어 황토빛 아름다운 유적지로 들어갔다.걸을때마다 고운 먼지가 낮게 일어났다가 발등에 내려앉는다. 사라져 버린 문명의 입자들...

 

 

<모헨조다로 중앙 유적>

 

 

유적지 중앙에는 커다란 불교 스투파와 승원 터가 있다. 모헨조다로의 중앙에서 만난 불교 유적. 그 모양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모헨조다로 문명이 불교문명이었나 하는 착각이 일어난다. 사실 1922년 이 유적을 처음 조사했던 영국 고고학자들도 스투파와 승원의 흔적을 보고 이곳을 불교유적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발굴을 계속하면서 인더스문명의 유적임을 알려주는 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비로소 이곳이 BC 2500년에서 BC 1700년까지 8백년동안 번영을 누렸던 인더스문명의 거대도시임이 밝혀졌다. 유적 중앙의 스투파와 승원은 모헨조다로가 멸망한 후 1천9백여년이 지나 이미 파괴된 유적 위에 세워진 것이다. 파괴된 유적, 그리고 그 위에 세워졌다 다시 폐허가 된 또 하나의 유적... 상대적으로 새로움도 이렇게 아득하니 모헨조다로의 시간이란...

 

 

<대형 목욕탕 터>

 

스투파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대형목욕탕 유적을 볼 수 있었다. 길이 12m, 너비 6.9m, 깊이 2.4m의 커다란 규모인데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상수도시설과 배수 및 하수도 시설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옛날에는 인더스강까지의 거리는 불과 5백여m 남짓이었는데, 지금은 강줄기가 바뀌어 4km 밖으로 벗어나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다.

 

 

 

모헨조다로는 유적만으로도 대단한 계획도시였음을 보여준다. 대략 인구 3, 4천명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시민들은 계층에 따라 주거구역을 달리했다. 사제를 중심으로 한 지배계층의 마을과 상,공인과 노동자 계층의 거주지가 각각 나뉘어서 존재하고 있었다. 지배계급의 주거지는 일반 주택인데도 한 건물 속에 여러 공간을 구획하여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곳은 건물의 규모뿐만이 아니라 모헨조다로를 대표하는 13cm 높이의 족장(혹은 제사장) 두상이 출토되어 지배계급의 거주지로 간주되고 있다.

 

 

 

벽돌로 만든 집들 중에는 2층 구조도 많았고, 수직적 벽의 두께도 상당히 두꺼웠다. 무더위를 막기 위한 의도였다고 한다. 반면 가난한 노동자들의 집은 다닥다닥 붙은 작은 규모였다. 그래도 하수도와 우물, 여러 가지 시설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는 걸 보면, 생활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깊은 우물 터>

 

유적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우물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떤 우물은 상당히 크고 보기에도 섬찟한 깊이였다. 또 어떤 우물은 개인 우물인 듯 집 안에 있었다. 전체적으로 유적지 안에 약 7백개의 우물 흔적이 있다고 하니, 우물 숫자만 가지고도 도시의 거대한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큰 도로들도 그대로 남아있는데, 모두 벽돌을 괴어서 만든 것이다.

 

 

 

이 도시는 대략 '8천만장'의 벽돌을 사용해서 건축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손으로 벽돌을 만져보니 그 단단함이 여전하다.

 

이 대단한 문명은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아리안족의 침략으로 인한 파괴, 인더스강의 홍수, 지진 등...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가설일 뿐이다. 내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침략자 아리안족이 이 문명의 주체인 드라비다인을 매우 경멸했기 때문에 더욱 철저하고 가혹한 파괴를 자행했을 거라는.

 

어쨌든 크로노스로 흘러온 시간은 부와 가난, 성과 속의 모든 구별을 같은 색으로 돌려 놓았다. 폐허에는 부자도 가난한자도 사제도 창녀도, 침략자와 원주민도, 그 누구도 살지 않는다. 평등이다. 골목의 벽에 기대서서 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고달픈 삶에 한숨짓는 소리, 기도하는 소리, 다투는 소리, 수레가 지나가고 짐승이 우는 소리들을 들어보려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 작고 이미지는 흐릿하다. 내가 그들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그들도 이곳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웠겠지. 또 수 천년이 지나고 나면 나와, 나의 세계는 어떻게 기억되고 해석될까...

 

모텔로 돌아와 게스트 북에 "Mohenjodaro is a dream"이라고 썼다. 이 꿈의 기록을 다시 와서 볼 수 있을까?

 

 

 

Suk kur로 가는 길

 

이제, 기나긴 귀국길에 올랐다. 먼저 승합차를 나눠 타고 Suk kur 공항으로 향했다. 네 시간 정도를 달렸는데 아름다운 파키스탄의 들녘이 아쉬움속에 스쳐간다. 공항으로 가기 전 파키스탄의 뒷골목을 들어갔다. 골목에는 지독한 악취 속에 혼잡한 삶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복잡한 거리를 빠져 나와 잠시 후 거대한 강을 만났다. 아, 인더스강!

  

문명의 젖줄 인더스 강. 역사 이전부터 흐르며 동양과 서양을 나눈 그 강이, 무진장한 인류의 스토리를 담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

 

Suk kur 공항은 무척 깨끗하고 시설도 훌륭했다. 대합실 편한 의자에 앉아 쉬는데, 대형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의 각도가 서글프다. 여행이 끝난다. 저 태양을 한국에서 맞이하겠지? 안녕, 수리야! 안녕, 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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