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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10:08

 

 

2001년 7월 5일

 

도로에서

 

어제 마켓에서 사온 중국산 감자로 끓인 국과 계란찜, 김으로 깔끔한 아침식사를 했다. 하지만 전기곤로를 이용해 밥짓기는 열 조절 감각이 없어 쉽지 않았다. 곧 익숙해지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중국산 쌀알을 '우두둑' 씹는다.

 

식사 후 잉흐자르갈에게 질문할 항목을 만들고 있는데, 밧조릭이 약속한 시간보다 삼십 분 일찍 왔다. 우리는 여행자 신고를 하기 위해 외국인여행자 신고소에 먼저 가기로 하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울란바타르 시내의 교통 혼잡>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도로의 교통 혼잡이 심했다. 나담이 가까워오면서 지방에서 차들이 많이 올라온 탓이다. 택시 운전사는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이리저리 빠져나가지만 다른 차들이 잘 양보해주지 않는다. 좌회전하려다 앞뒤가 막혀 도로 한가운데 한참 멈춰있으려니 차들의 성난 경적 소리가 요란하다.

 

우리가 탄 택시 운전사는 차를 무척 난폭하게 몰았다. 이후에도 택시를 타면 대부분의 기사들이 거칠게 운전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초원에서 말 타고 질주하던 근성 때문일까. 아무튼 폭주족을 연상시키는 거친 운전에 순간순간 아찔하다.

 

몽골의 택시는 흥미로운 점이 많다. 우선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노란색 택시를 제외하면 겉으로는 택시와 일반 승용차를 구분하기 어렵다. 구분하는 방법은 길가에 서서 손을 들 때 다가와 서면 택시(역할을 하는)이고, 아니면 승용차이다. 물론 개인의 승용차가 부업삼아 돈받고 태워주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차와 오른쪽에 있는 차가 함께 거리를 달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많은 차량들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차들이다보니 운전석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낯설고 낯익은 모습이 묘하게 공존한다.

 

종교인류학을 공부해오면서 얻은 것은, 모든 사건과 계기, 행동에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민감하게 포착해내면 의외의 창조적 해석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질문이 끊이지 않는다.

    (운전사에게) 차 안에 차크라(법륜)를 왜 걸어놓았어요?

    이것은 자동차 바퀴와 비슷하게 생겨서 운전사들에게 행운을 주니까요.

차크라도 '바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의 불교적 의미는 그에게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운전을 생업으로 하는 그에게 차크라와 타이어의 유비는 가장 생생한 종교적 동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택시 안의 차크라>

 

아침의 폭주(?) 끝에 울란바타르 변두리에 있는 외국인 여행자 신고소에 가니 얼마 전 중심가의 '스카이텔' 사옥 옆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그곳을 찾아갔더니 30일 이내 체류자는 별도의 신고가 필요없다면서 여권을 돌려줬다. 한국에서 필드워크를 준비할 때, 여행자 신고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크다고 해서 긴장했는데 완전히 잘못된 정보였다.

 

간단사

 

간단사 앞 상점에 들러 샤먼과 라마승들에게 선물할 푸른 하닥을 다섯 개 샀다. 하닥은 다섯 가지 색깔이 있지만 몽골인들은 푸른 색을 가장 좋아한다. 하늘, 텡그리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빛이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조금 시간이 남아 간단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정문으로 들어가다가 한쪽에 좌판을 깔고 손금보는 노인을 만났다. 복잡한 손금이 그려진 종이를 앞에 놓고 있는 그는 불교 사원의 '전통의술교육센터'에서 배웠다고 한다. 손금보는 비용을 물으니 3천 투그릭이라고 했다.(비싼 편이다. 외국인이라 그렇게 말했나?)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해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간단사 안으로 들어갔다.

 

 

<간단사 경내>

 

간단사 경내의 동편 사원에 들어가니 비둘기 백 여 마리가 신도들과 여행자들이 던져주는 모이를 먹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호랄(법회)에 참석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사원 곳곳에서 의자에 앉아 염주를 굴리며 기도하는 사람들, 기도통(Prayer Wheel)을 돌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흐린 날씨여서 그런지 차분한 분위기가 좋다. 인터뷰나 관찰할 시간이 없어서 산책하듯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아시아 샤먼협회

 

 

 

다시 차를 타고 잉흐자르갈이 회원으로 활동중인 "아시아샤먼협회"를 찾아갔다. 시계를 잘못 읽어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지만 마침 문을 열고 들어가는 협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쪽에 신단이 넓게 차려져 있는 신당에서 협회 총무 수흐바트(Sukhbat)와 샤먼 잉흐자르갈(Inkhjaargal)을 만났다. 신단을 마주한 나무 테이블에 앉으니 잉흐자르갈이 사탕과 말린 치즈 등 유제품을 내왔다. 앞으로 함께 다닐 일을 생각해서 수흐바트보다는 잉흐자르갈과 먼저 대화하고 싶었지만, 수흐바트가 당연하다는 듯이 앞에 앉고 잉흐자르갈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구경하듯 앉았다. 밧조릭에게 잉흐자르갈과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니 조직 특성상 수흐바트와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들은 어제 늦게까지 울란바타르 인근에서 굿을 해서 무척 피곤한 상태였지만 인터뷰에 성실히 임해 주었다.

 

Sukhbat

 

당연히 수흐바트도 샤먼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부터 샤먼 일을 했는지 물어보니 자기는 샤먼이 아니라 샤먼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서 자신이 쓴 얇은 책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주로 흑샤먼 전통을 연구하면서, 샤먼들과 함께 협회의 일을 책임지고 있다.

 

수흐바트는 그들의 협회에 이태리, 티벳 등 여러 나라의 샤먼들이 다녀갔다는 자랑부터 했다. 아마도 협회의 대표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아... 그래요?"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하니 한국 샤먼들과도 교류하고 싶다며 자기들을 한국에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일반적으로 샤머니즘에는 교회와 조직이 없다. 그러므로 샤먼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내부의 결속을 강조하는 경향은 매우 근대적 현상이다. 물론 고대의 몽골 샤머니즘은 정치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샤먼들의 조직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이지히(Walther Heissig)는 16세기 불교 선교사들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한 샤먼들의 회의가 있었다는 자료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불교의 확산 이후 샤머니즘이 주변화되면서 사실상 샤먼들의 조직은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샤먼들의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샤먼들이 종교적,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 협회에는 몇 명의 샤먼들이 속해 있나요?

    울란바타르에는 우리 협회에 속한 샤먼이 다섯 명, 그렇지 않은 샤먼이 두명, 모두 합해서 일곱 명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부리야트 샤먼이 한명이고 헙스걸에서 온 샤먼이 다섯명, 그리고 아르항가이에서 온 샤먼도 한 명 있습니다. 요즘 샤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360명의 샤먼이 있고,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르항가이 아이막에서 왔다는 샤먼은 지난 해 만났던 수미야(Sumya)였다. 아무튼 인구 60만의 최대 도시 울란바타르에서 활동 중인 샤먼이 일곱명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흐바트는 몽골 북부 헙스걸 아이막 출신 샤먼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대화 중에 지난 해 헙스걸 호수 동편에서 만난 늙은 샤먼 롭스타이를 이야기했더니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롭스타이는 얼굴에 심하게 곪은 상처가 있어서 함께 갔던 쩨첸 교수가 상처를 씻어주고 치료해준 적이 있었다. 일종의 기치료였는데 젊은 여성에게 자신을 진지하게 내맡기는 노 샤먼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흐바트는 최근에는 그를 만나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샤먼협회에 속한 샤먼들은 주로 어디서 굿을 하죠?

    집에서도 하고 바깥 자연에서도 합니다.

    한달 중에 특별한 날을 정해 정기적으로 하는 굿도 있나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절기에 맞춰 하는 굿은 있어요. 6월 20일 일식 때 굿을 하고, 5월 1일에 새들이 돌아오는 굿을, 4월 5일에는 땅의 신이 오는 굿을(겨울잠에서 동물들이 돌아오는 것), 8월 22일에는 땅의 신이 돌아가는 굿(곰,쥐등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것) 등 자연의 주기에 맞춰 의례를 합니다.

8월이면 한여름일텐데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기 시작한다? 8월이면 한여름인데 무슨 겨울잠을 자냐고 물어보니, 밧조릭은 정부에서도 벌써 겨울 준비에 들어갔다고 참견했다. 확실히 계절의 감각과 의미가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샤먼이 되죠?

    샤먼은 하늘에서 내려줍니다.

    그럼 몽골 샤먼들의 유형은 어떻게 '구별'합니까?

    '차별'하지는 않고, 다만 나이 많은 순서는 지킵니다.

그는 '구별'이라는 말을 '차별'로 이해한 것 같았다. 대답이 의아해서 다시 물어보니 흑샤먼, 황샤먼, 백샤먼 세 유형의 샤먼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백샤먼은 좋은 샤먼, 흑샤먼은 어둡고 나쁜 샤먼, 황샤먼은 라마교와 혼합된 샤먼입니다. 현재 흑샤먼과 황샤먼이 많습니다. 부리야트에는 대부분 황샤먼들이죠. 활동하는 형태와 내용이 다르기는 하지만 세 유형의 샤먼들끼리는 서로 친합니다. 지난 일식 때에는 봄바트에서 함께 굿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흑샤먼을 '나쁜' 샤먼이라고 표현한 것은 부정적 의미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 협회에 속한 대부분의 샤먼이 흑샤먼이기 때문이다. 물론 흑샤먼은 남을 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샤먼들은 거의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대중은 흑샤먼에 대한 두려움과 매혹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흑샤먼들이 영험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샤먼들이 섬기는 자연 신격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샤먼은 자연에서 힘을 얻으므로, 엉거트(조상신령, 자연신령), 텡그리, 가자르(대지의 신) 세 신격들을 섬깁니다. 그중 가자르(에튀겐)의 수는 77입니다. 무척 중요한 신격이므로 샤먼들은 몽골의 456개 성스러운 산에서 신을 위한 의례를 합니다. 땅의 신 로스에는 하얀색, 검정색, 푸른색 세 종류가 있습니다. 흰색은 땅의 동물, 푸른 색은 물고기, 검정색은 땅 밑에 사는 것들의 신령입니다. 사브다크는 산의 주인이고, 검은 로스는 땅의 주인, 푸른 로스는 물의 주인, 하얀 로스는 동물과 새의 주인입니다.

수흐바트는 로스와 사브다크를 다소 혼란스럽게 설명했지만, 개념적으로 로스(luus)는 물의 신이며 사브다크(sab dg)는 땅의 신이다. 하지만 몽골인들은 로스와 사브다크를 구별된 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로스라고 말하거나 사브다크라고 각각 말하는 경우에도 그 의미는 '로스-사브다크'라는 통합적 관념을 가리킨다. 이 로스-사브다크는 '용(dragon)'과 '흙'을 뜻하는 티벳어에서 온 것이지만, 신격을 수입한 것은 아니고 원래의 전통적인 대지신 관념을 티벳식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또 동물마다 모두 엉거트가 있습니다. 심지어 무생물에도 엉거트가 있습니다.

    무생물에도요? 그럼 이런 탁자나 펜에도 엉거트가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신의 펜에는 당신의 엉거트가 있습니다. 만약 누가 그 펜을 달라고 하면 당신의 엉거트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엉거트는 부를 수도 있고, 집어넣을 수도 있다. 이처럼 모든 것에 엉거트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세계의 모든 요소를 유기체적 관계망으로 살아있게 한다. 샤머니즘이 생태친화적 관계성을 중심원리로 삼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현대적 상황은 자연과 사물, 인간에 대한 전통적 이해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개혁, 개방 이후 몽골은 과도한 목축증가로 인한 초지의 황폐화, 잦은 화재, 가뭄과 한파로 인한 가축의 집단폐사, 남부를 강타하고 있는 사막화 현상 등 심각한 재앙(zud)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사태는 비슷한 기후,생태,문화 조건의 부리야트, 내몽골에 비해 상대적으로 청정한 환경을 유지해왔던 몽골의 자연을 위협하고 있다. 사회주의때에도 보전되었던 환경이 자본주의 10년만에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자연환경의 변화와 파괴에 대한 샤먼들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샤먼들은 자연의 파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이 점점 나빠져 강이 더러워지고 초지가 없어지면 신령들이 화를 내고 벌을 줄 것입니다.

    그 벌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벌은 이미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의 한파와 화재, 가뭄 등이 그 벌입니다.

샤머니즘은 자연과 영적 연대성을 중요하게 포함하고 있는 종교현상이다. 그만큼 자연의 변화는 샤먼들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몽골 샤머니즘은 자연의 파괴를 막는 행동의 원리가 될 것인가, 아니면 파괴를 통한 성장을 축원하는 자본주의적 물신성으로 경도될 것인가...

    사회주의 시기의 경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샤머니즘 전통의 파괴가 극심했습니다. 원래 샤머니즘은 시, 노래, 춤, 북과 마우스하프 등의 무구, 의상, 다섯 가지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대에 그런 전통문화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수흐바트는 몽골의 샤머니즘이 탄압받았던 역사를 설명했다. 16세기에 불교가 몽골의 지배종교가 된 후 샤먼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특히 1937년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샤머니즘을 잔혹하게 탄압해 100여명의 샤먼들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불교는 더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당시 인구가 30만에 불과했는데 1937년에서 39년까지 살해된 라마승과 유목민들이 약 3만명이었으니 그 역사적 상처와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몽골 사회주의 체제는 30년대 말의 탄압 시기 이후로는, 중국이나 러시아와는 달리 반전통주의를 그리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것은 넓은 땅에 적은 인구가 살고 있고, 중앙정부의 이념적 선전이 미치기 어려운 지역도 많았다는 점과 관련될 것이다. 현재의 샤먼들이 주로 헙스걸 아이막 같은 변방지역 출신인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탄압 경험에 대한 집단적 회상은 전통과 종교적 지식의 보전을 방해함으로써 전통 문화, 종교의 상당 부분을 유실시켰다.

    불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죠?

    샤머니즘이 불교보다 먼저 존재했습니다. 티벳불교도 샤머니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아버지 종교입니다.

샤머니즘을 아버지 종교라고 하는 이야기는 몽골인들에게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만큼 샤머니즘을 미신이나, 낡은 종교로 치부하지 않는 문화적 분위기가 있다. 따라서 샤머니즘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반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주류 중교인 불교가 샤머니즘적 성격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알탄칸(Altan Khan) 이후 지배적 종교로 자리잡은 불교는 이미 티벳에서 샤머니즘적 종교인 'Bon-po'와 습합을 이룬 상태였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의 계기를 제외하면 샤머니즘과 종교적으로 충돌할 부분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신단 위의 동물 신령>

 

수흐바트는 신단에 놓인 종교 상징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신단에는 여러 가지 그림과 신상, 갖가지 물건들과 제물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그 대부분은 신도들이 가져온 것으로 샤먼들은 그것들에게 엉거트를 집어넣어준다. 신단 한쪽에 걸려있는 푸른 무복에는 세 개의 만(卍)자가 수직으로 수놓아 있었는데, 맨 위와 아래 卍자는 시계 방향이고 가운데는 반대 방향이다. 수흐바트는 그것이 해의 돌아가는 모양과 우주의 에너지를 상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하지만 잉흐자르갈의 해석은 달랐다.) 신단에 올려진 하닥의 색깔도 여러 가지이다.

    원래 하닥은 다섯 가지 색이 있고 각각 그 의미가 다릅니다. 녹색은 가자르(대지), 흰색은 구름과 마음, 푸른색은 하늘, 노란색은 태양, 붉은 색은 불을 상징합니다. 샤먼들은 특히 노란색과 붉은 색을 좋아합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해와 불이기 때문이죠.

그의 말 중에 흰 하닥에 대한 설명이 미심쩍었다. 구름을 특별히 색으로 상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점, 그리고 몽골 샤머니즘에서 흰색은 영원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그의 설명을 계속 들었다.

 

신단 아래쪽 중앙의 화로 안에 집게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나쁜 마음을 집어서 밖으로 빼내는 것을 상징한다. 하지만 불도 없이 화로의 뼈대만 앙상한 모습은 전형적인 '전시용'이다. 그리고 신단 중앙 좌측에는 구리로 만든 묵직한 칼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에게서 나쁜 기운을 없애는 도구였다. 수흐바트는 칼을 들어 내 몸의 양편으로 나쁜 기운을 잘라내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외적 동작으로 내 안의 악한 기운과 병든 마음을 잘라내고 빼낼 수 있을까.

 

신단에 녹색 미륵불이 있는 이유를 물어보니 티벳 샤먼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 몽골 샤먼들도 황샤먼들의 경우에는 불교의 신격을 의례에 포함시키고 있다. 물론 흑샤먼 전통은 불교와 적대적이다.

 

신단 정 가운데에 말 인형을 담은 나무 상자가 걸려 있었다. 말 인형을 가장 중요해보이는 위치에 배치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몽골인들은 기마민족입니다. 그래서 말을 가장 큰 엉거트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 말 신상의 목에 있는 리본은 헙스걸의 다인데르흐 지역 샤먼의 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500년 된 것입니다.

신단 상단의 양편으로는 각각 아홉 엉거트상이 붙어 있는 긴 리본이 걸려 있었다. 각 리본마다 다섯 가지 색깔의 천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의미는 다섯 가지 하닥과 동일했다. 상단 좌측에는 푸른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는데, 수흐바트는 나쁜 영향으로부터 엉거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역시 잉흐자르갈의 설명과 달랐다.) 그 옆에는 밝은 색색의 천으로 치장된 리본 뭉치가 있었다. 그것은 16살 아래의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엉거트였다. 신단 맞은편에는 샤먼의 무복과 함께 검은 리본을 길게 매단 모자가 걸려있었다. 그 리본의 의미는 미간에 있는 '제3의 눈'을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엉거트를 넣어놓는 주머니>

 

신당 안의 갖가지 물건들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수흐바트는 아시아샤먼협회 회원증의 로고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원이 색색으로 넓혀지는 형상인데, 가운데 흰색은 엉거트, 푸른색은 하늘, 노란색은 해, 녹색은 땅, 그리고 검은 색은 검은 하늘(지하계)을 상징한다. 왜 엉거트를 흰색으로 상징하는지 물어보니 엉거트는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역시 흰 색은 영원과 관련이 있었다.

 

Inkhjaargal

 

48세(말띠)의 잉흐자르갈은 헙스걸 출신 샤먼이다. 그녀의 어머니 '한드크'는 샤먼이었고 잉흐자르갈도 다섯 살때 신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는 사회주의시기였기 때문에 내림굿을 받아 샤먼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는 샤먼의 길을 걷는 대신 군인인 오빠를 따라 그녀 나이 여덟살 때 울란바타르로 이주했고, 자라서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사회주의 시기 동안 정부의 무역회사에서 일했다. 사회주의가 끝난 후에는 자기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주의 때부터 오랫동안 병에 시달려야 했다. 잉흐자르갈은 자신의 병은 샤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샤먼으로 선택된 사람이 그것을 피할 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받는다는 생각은 한국 샤머니즘의 믿음과 동일하다. 특히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해를 입는다는 인다리 현상은 가장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결국 잉흐자르갈은 6년 전에 바이라에게 내림굿을 받고 샤먼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니까 그녀의 신어머니는 바이라인 셈이다.

    어떤 엉거트들을 섬기나요?

    내가 섬기는 엉거트는 모두 열 셋이에요.

    텡그리는 섬기지 않나요?

    물론 섬기죠. 텡그리의 수는 모두 100인데 샤먼들이 의례를 하는 텡그리는 99 텡그리에요.

    의례를 하지 않는 한 텡그리는 뭐죠?

    멍케 텡그리(영원한 하늘)에요.

    엉거트들 사이에 어떤 위계가 있나요?

    우리가 섬기는 엉거트에는 위계가 없어요.

    엉거트들이 샤먼에게 무엇을 해주나요?

    샤먼 일을 할 때 생기는 위험을 '혈통(샤먼 조상의 엉거트)'이 보호해줘요. 샤먼이 되는 것은 "하늘이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에요. 샤먼은 대를 이을수록 힘이 늘어나요.

흑샤먼들은 샤먼의 가계를 매우 중시한다. 그러므로 조상 엉거트는 섬기는 신격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녀가 섬기는 엉거트도 아버지, 어머니 엉거트와 자연의 엉거트들이다. 자연 엉거트는 헙스걸 아가르하이흥 산의 엉거트이다. 이 신격은 그녀가 다섯 살 때 들어온 엉거트이다.

    울란바타르 지역의 엉거트는 섬기지 않나요?

    이곳의 엉거트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하지만 고향의 엉거트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어요.

    헙스걸에서 울란바타르까지는 거리가 무척 먼데 그곳의 엉거트들이 이곳까지 올 수 있어요?

    엉거트를 부르면 700km 거리는 4분 정도면 올 수 있어요.

대부분의 샤머니즘 신격은 특정 지역, 공간, 사물과 결부되어 있다. 이처럼 지역의 생태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샤머니즘에서 신령의 이동이 광역화된다는 것은 샤먼들의 도시 이주와 관련된 새로운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종교적 활동을 할 수 없었나요?

    공개적으로 할 수는 없었죠. 무복 같은 것은 입을 엄두도 못냈어요. 하지만 몸이 아플 때마다 혼자 마우스하프로 병을 가라앉혔어요. 그때는 엉거트에게 다시 만날 날을 아무도 모르게 약속했어요.

잉흐자르갈은 사회주의 시절의 고통을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홀로 엉거트를 만난 후 다음 약속을 정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미어졌다. 엉거트 편에서는 또 어떠했을까? 정치적 억압이 엉거트마저 위축시켰다는 것은 신에 대한 연민을 자아낸다. 인간이 고난에 처할 때 다른 곳에서 관망하는 신이 아니라, 함께 억눌리며 수난당하는 엉거트의 경험은 샤먼과 엉거트의 내밀한 연대성을 더욱 깊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주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죠?

    힘든 일에 시달리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물론 부자들도 찾아오죠. 연령으로 보면 주로 젊은 사람들이 취직이나 결혼 문제로 찾아와요.

    그 의뢰인들은 어디에서 만나죠?

    이곳(협회)에서 만나요.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상태를 진단한 후 1,3,6이 들어가는 날 밤에는 이곳 신당에서 굿을 해요. 나머지 날은 바깥 자연, 주로 울란바타르 주변 산들의 어워에서 굿을 하죠.

    당신의 집에서는 굿을 하지 않나요?

    네. 신단은 있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아파트여서 집에서 굿을 하면 이웃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싫은 소리를 해요.

그녀가 바이라의 제자라기에 조심스럽게 바이라의 죽음에 대해 물어보니 다른 설명 없이 단지 위가 아파 죽었다고만 대답했다. 그녀는 바이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다른 질문을 했다.

    당신도 제자를 키우고 있나요?

    네. 지난 해 한 사람에게 내림굿을 해주었고, 지금은 여자 아이 하나를 가르치고 있어요.

    내림굿은 어떻게 하죠?

    스승 샤먼은 엉거트를 받았다는 사람에게 정말 엉거트가 들어왔는지를 확인한 후 내림굿을 해줘요. 하지만 내림굿을 받았다고 바로 '옷을 입고' 샤먼 일을 할 수는 없어요. 내림굿 한 후 3년 동안 마우스하프만 가지고 일하다가 옷을 입어요. 이때 제자가 옷을 만들고 선생이 그것을 상으로 내려주죠.

'옷을 입는다'는 말은 무복을 입고 정식 샤먼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관용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요즘 샤머니즘에 대한 몽골인들의 반응은 어떤 것 같아요?

    울란바타르에서는 부쩍 인기를 끌고 있어요.

    라마승들은 샤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90년대 초반까지는 라마승들과 불교 신자들이 샤머니즘을 나쁘게 생각했지만, 1995년 경부터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 이유는 샤먼이 라마승보다 점과 굿을 더 잘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누가 해를 보낸 것을 풀려면 라마승들은 보통 4, 5년 걸리지만 샤먼은 굿을 서, 너번만 해도 풀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라마승들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나요?

    라마승들의 30% 정도는 샤먼의 힘을 믿어요. 남의 저주를 받은 라마승들이 샤먼을 찾아와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경우도 있죠.

    간단사 같은 중심 사원의 라마승들도 찾아오나요?

    그럼요. 간단사를 비롯해 여러 사원의 라마승들이 찾아와요.

잉흐자르갈은 신단에 걸려있는 무복에 새겨진 卍자의 의미를 수흐바트와는 다르게 설명했다. 그것은 번개를 예방하는 상징이며, 지금도 헙스걸 사람들은 요구르트로 卍자를 써놓는다는 것이다. 하닥과 주머니에 대한 설명도 조금 달랐다. 엉거트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신단에 머물러 있도록 하닥으로 가리는 것이고, 푸른색 주머니도 그런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었다.

 

수흐바트와 잉흐자르갈은 다음 월요일(9일)에 울란바타르에서 30km 떨어진 곳에서 나담 말 경주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큰 굿을 한다면서 함께 가자고 권했고, 그때 우리를 위해 굿을 해주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이 계획은 모두 취소되었다.) 잉흐자르갈과 우리는 내일 헙스걸에서 온 흑샤먼 촐란바타르의 집을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샤먼 잉흐자르갈은 묘한 슬픔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전날의 굿 때문에 피곤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고단한 삶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 그녀를 단지 않내자로 대하지 말고 충분한 대화를 나누기로 작정했다.

 

Victims of Political Persecution Memorial Museum

 

시내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정치적 박해 희생자 추모 박물관'을 찾아갔다. 핑크빛의 아담한 목조건물인 박물관은, 원래 인민혁명 초기의 수상 긴든(P. Genden)의 집무실이 있던 건물을 그의 딸이 개조하여 1996년 9월 10일 '정치적 희생자의 날'에 개관한 것이다. 긴든은 인민혁명 이후 스탈린과 대립하다 체포된 후 시베리아로 유배되어 결국 처형당한 인물이다. 그의 뒤를 이은 초이발산은 라마승과 민족주의자, 지주들을 무참히 학살하며 인민혁명당내 좌파의 권력을 안착시켰다. 이 박물관은 당시의 박해를 증언하는 각종 전시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각 아이막의 희생자 명단>

 

1층 추모실에는 박해 시기에 죽은 라마승, 군인, 민간인들의 이름이 각 아이막(aimag, 道)별로 분류하여 사방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름 앞에 찍혀 있는 붉은색동그라미는 군인, 파란색은 지식인과 관리 등 민간인, 노란색은 라마승을 나타낸다. 대충 봐도 노란색 동그라미가 가장 많다. 1937년에서 39년 사이에 학살당한 라마승만 17,612명이기 때문이다.

 

라마승들이 집중적 박해의 대상이 된 까닭은 당시 사회주의에 맞설 조직력을 불교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군사력을 억제하기 위한 청대의 불교 지원정책으로 인해 20세기 초까지 인구가 겨우 30만을 유지한 반면 사원의 힘과 경제력은 막강했다. 또한 인민정부의 지도자들 중에는 전통적인 불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 많아서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탈린은 몽골에 당과 종교의 이중권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교를 말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것이 37년 이후의 대대적 탄압이었다.

 

 

<학살을 묘사한 그림>

 

<라마승들 비판한 풍자화>

 

2층 전시실에는 살해당한 라마승, 지식인, 군인, 민간인들의 사진과 관련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의 선전 포스터는 수탈을 방조하는 라마승들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함으로 불교 탄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했다. 물론 특권화된 불교의 문제점도 있었겠지만, 종교를 제도적 말살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다. 사실 마르크스도 종교에 대한 '억압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는 공식적 정책으로서의 억압은 순교를 양산하며, 순교는 종교적 결속력을 더 강화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종교는 억압해야 할 것이 아니라 무시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반종교정책은 잔혹한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그의 지원을 받은 초이발산이 대량학살을 자행한 후 모스크바에 갔을 때, 공산당 지도자들은 다분히 격려성 말투로 "너무 한 것 아냐?"라며 웃었다.

 

현재 몽골인들은 이념에서 민족으로 가치의 중심을 이동하고 있으므로, 초이발산을 강하게 비판하지는 않고 있다. 그가 아무리 제2의 스탈린이었다고 해도 몽골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탈린에 대한 반감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박물관에 있는 스탈린 관련 자료 중 하나는 다른 전시물과 같은 공간에 놓아두기도 싫다는 듯이 부숴진 천장 아래 초라하게 붙어 있었다.

 

 

<스탈린 사진>

 

한편 전시실 한 편에서 당시의 사형집행 명령서를 보았다. 한 인간의 생명을 끝나게 하는 종이 한 장. 그것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죄목을 사면한 손바닥만한 종이 한 장의 무게는 또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울란바타르에서 철거되는 스탈린 동상>

 

박물관을 나오면서 마음이 무거운 것은 아직도 사회주의의 이상이 내게 소중한 반면, 현실 역사 속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만으로 사회주의의 이념을 현실화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마오쩌뚱은 권력이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진정한 힘은 민중의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는 '합의' 과정에서 나온다. 설득력을 갖지 못한 사람만이 폭력을 휘두른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몽골의 비극은 몽골적 현실에 맞는 사회주의를 자주적으로 건설하지 못한 채 외적 강요에 의해 자신들의 땅을 피로 물들였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종교...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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