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쉬 푼레브 사원의 주지 간투무르: 7월 7일
Dash Punrev 사원의 주지 Gantumur
잉흐자르갈의 셀폰이 꺼져 있어 대책없이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 내게는 익숙하고 편안한 현상이다. 연애 시절 와이프는 만나기로 한 시간으로부터 보통 한 시간 정도 늦게 나타나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았고 나 역시 화내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 약속한 시간보다 늦게 오면 그 기다리는 시간을 거저 주어진 선물처럼 여기는 내 습관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놀러 가면서도 항상 책을 가지고 다녔고, 틈만 나면 어디서든 책을 읽어 내려갔다. 누군가를 기다리다 독서에 몰입하게 되면 "그(혹은 그녀)가 좀 더 늦게 왔으면..." 하는 바램을 갖기도 했다. 물론 이는 시간을 내 마음대로 디자인할 수 있었던 시절의 경험일 뿐이지만, 지금도 생활과 일에 큰 지장이 없을 경우 약속 위반으로 인해 생기는 기다림을 즐긴다.
30분 뒤에 그녀와 전화 연락이 되어 잉흐자르갈의 집 앞으로 갔다. 우리를 만난 그녀는 어제 말했던 노 라마승이 시골에 아내를 데리러 갔기 때문에 오늘 만날 수 없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아마도 나담 참가를 위해 시골에서 울란바타르로 올라오는 모양이다. 떠난 사람이야 어쩔 수 없어, 대신 다쉬 푼레브(Dash Punlev)사원의 주지인 간투무르(Gantumur)를 만나기로 했다.
<잉흐자르갈의 집 근처>
울란바타르 서쪽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어두워진 하늘에서 우산으로 가릴 정도는 아닌 비가 촉촉하게 도시를 적신다. 건조했던 대기와 대지가 가뭄 끝 젖은 몸으로 살아나는 식물같다.
다쉬 푼레브 사원은 울란바타르 서편 변두리 외진 곳에, 다가가기 편한 분위기로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쇠줄에 묶인 커다란 개들이 줄만 없으면 달려들어 어떻게 할 듯 사납게 짖는다. 교회나 사원에 개를 기르는 까닭을 모르겠다. 남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함일까? 글쎄... 아무튼 사나운 개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보ㄴ 그들이 거기 있는 이유가 중생의 각성을 끌어내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Dash Punrev 사원>
원형 게르 형태로 지어진 사원 건물 안에 들어가니 정면 유리장 안에 석가모니불이 있고 그 좌우로 각각 화이트 타라와 그린 타라가 모셔져 있었다. 몽골의 불교 사원들을 방문하면 종종 유리장 안에 모신 불상들을 볼 수 있다. 아마 먼지 많은 도시에서 불상들의 광택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리장 안에 모셔놓은 것 같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런 모양새로 팔던 인형들 - 얇은 유리를 흰 비닐 테이프로 붙여 만든 그 안에 삐쩍 마른 서양 얘들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동자를 반짝이며 들어 있었지. - 이 생각나 경외감이 약해진다. 유리장 바깥으로는 마하칼라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왼편에는 다른 불교의 신격과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있었다.
사원 입구 왼편에는 몇 명의 신자들이 늙은 라마승과 상담하고 있었다. 라마승들은 신자들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은 후 젊은 라마승을 시켜 커다란 불경 꾸러미를 가져오게 한 후, 그것을 의뢰인의 머리에 대고 축복해주었다. 불경 '덩어리'에 무슨 힘이 들어있을까... 하지만 그 신앙의 상호성에서 물리적 불경이 영적 기운을 입는 것 같다.
잠시 후 어린 라마승들이 들어오더니 북과 고동, 심벌즈를 요란하게 울리며 불경을 읽기 시작했다. 긴 주문처럼 들리는 불경낭송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어린 라마승들은 불경을 읽는 와중에도 연신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고 장난친다. 음... '장난꾸러기'(?) 수행자들...
<라마승과 상담하는 신자들>
<Dash Punrev 사원의 어린 라마승들>
사원에 앉아 불경소리를 듣고 있은지 얼마 되지 않아, 노란 몽골 델을 입은 주지 간투무르가 들어와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그의 작은 방 한켠에도 신단이 차려 있었다.
<주지 Gantumur>
간투무르는 아르항가이 아이막(aimag, 道) 이흐 테무르 솜(sum, 郡) 출신이다. 그는 8살 때 라마 사원에 들어갔지만, 사회주의자들이 사원을 폐쇄하고 어린 라마승들을 일반 학교로 돌려보내는 정책에 따라 11살 때 사원을 떠났다. 그후 대학을 졸업하고 68년에 결혼했고(지금 그에게는 31세된 딸이 하나 있는데 영어선생이다.), 관리의 길에 들어서 아르항가이 아이막의 부지사까지 승진했다. 그러다가 사회주의가 붕괴하자 관직을 떠나 1992년에 다른 라마승 5명과 함께 이곳에 사원을 세웠다.
여기에 사원을 세운 이유는 무엇이죠?
이곳은 원래 죽은 사람들을 천에 싸서 가져다 놓는 무덤 자리였습니다. 지금도 땅을 파면 유골이 나오죠. 이런 흉흉한 곳에 사원을 세운 까닭은 첫째, 강건너 누흐트 산과 이곳 뒤편 나릉잉게르 사이에 귀신들이 오가고 있어 그것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 이유는 이 근처에 큰 스님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시절 큰 스님들이 이곳에서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고 한다.) . 그리고 셋째 이유는 누흐트 산 앞에서 말경주를 하기 때문에 화가난 로스-사브다크를 위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몽골 샤머니즘에 "엉거트의 달리기"라는 것이 있다. 엉거트가 달리는 곳에 있다가 엉거트와 충돌하면 재앙을 당한다는 믿음이다. 사원 건립 배경에 대한 간투무르의 이야기는 별로 불교적이지 않다. 오히려 샤머니즘, 혹은 몽골 민간신앙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사회주의 이전까지만 해도 한 집에 아들 하나는 라마승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청대의 적극적인 불교 지원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몽골 인구가 급감하여 20세기 초에 몽골 인구는 30만명에 불과했다. 어린 간투무르는 처음에 '민쭈'라는 라마승을 스승으로 모셨다. 라마승이 되려는 사람은 자기의 스승 라마승을 정해 그 밑에서 제자의 의무를 다하면서 스승의 지식을 물려받는다.
티벳불교의 영향권 하에 있는 몽골불교는 샤머니즘과 쉽게 분간할 수 없다. 이미 몽골에 전래된 티벳 불교가 티벳의 샤머니즘적 종교인 '본(Bon)'과 습합된 것이었으므로, 불교가 샤머니즘과 융합해온 것은 당연할 것이다. 간투무르에게 불교의 민간신앙적 요소들에 대해 질문해보기로 했다.
보통 몽골의 라마승들도 점을 친다. 점치는 것을 배우는 길은 집안의 아버지로부터, 스승으로부터 그리고 혼자 책을 보고 배우는 것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즉 점은 사원에서도 '공식적으로' 가르친다. (간투무르는 혼자 몽골어로 된 경전을 읽으면서 배웠다.)
점칠 때는 의뢰인의 띠, 띠에 맞는 點, 몇 년 생, 질병 여부, '태어날 때 어떻게 앉았는지' 등을 물어본다.(몽골인들에게는 각 띠에 맞게 점(點)의 갯수가 있으며, 땅, 불, 풀 등에 앉는다는 구별 방식이 있다.) 그런 것을 알아본 후에 그 사람에게 '맞는' 불경을 선택해 읽어주는 것이 불교 라마승들이 하는 치유 과정이다.
사원에 찾아오는 신도들은 사업의 행운이나 무병(無病)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다. 신도들이 주로 오는 때는 하루 중에는 아침 8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가장 많고, 일년 중에는 '차강사르(White Moon, 설)'같은 절기 때에 많이 찾아온다.
어떤 신도들은 스스로 점을 쳐 자신의 문제를 판단하여 라마승들에게 "이것을 고쳐달라.", "이 불경을 읽어달라."는 등 구체적으로 주문하기도 한다.
불경은 스님들만 읽을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신도들도 일상 생활의 다양한 상황에 맞는 불경과 주문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티벳어로 되어 있어 그 의미를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경의 현대 몽골어 번역 문제도 내게는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뒤에 불경 번역이 늦춰지고 있는 것을 라마승들의 종교적 직능자로서의 기득권 옹호로 분석해 보았다.)
신도들이 집에서 스스로 하는 의례는 없나요?
각자 집에서 자신의 신에게 수시로 절하며 한달에 한번 향을 피우고 경전도 모셔놓습니다. (그 내용을 모른 채 경전을 신처럼 모셔놓는 경우가 많다.)
다쉬 푼레브 사원의 정기적 법회는 첫째 만라이(음력 8일)로 병이 없게 해달라는 의례이고, 둘째는 산도이쥬트(음력 15일)로 16가지 경전을 읽어 갑작스럽게 닥치는 불행을 막는 의례이다. 이 의례에서는 개인적인 것 뿐 아니라 가뭄 같은 공동체적 재앙을 막는 것도 포함한다. 셋째는 아루왕강가르(간단히 '독쉭'이라고도 함)로 음력 29일에 열리는 가장 큰 의례이다. 이 의례에서는 모든 좋은 것, 생명있는 모든 것을 편안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장례식때면 라마승은 먼저 죽은 이를 어디에 묻을 것인지 정해준다. 그리고 로스-사브다크신에게 불경을 외우면서 그 땅을 정화한다. 그 다음 뿔과 어치르(돌, 쌍전석), 나무조각(부릅:목석)으로 땅을 조금 판다. 결혼식때는 새 부부가 잘 되라고 불경을 외워주는데, 사람마다 맞는 띠의 신을 고려하여 적합한 불경을 읽어준다. 그 내용은 먹을 것이 많게 해달라는 풍요의 바램을 담고 있다.
사회주의 때는 어떻게 활동했습니까?
당이 간단사에 못 들어가게 했고 정보부에서도 감시했기 때문에 주로 비밀리에 밤에 모여 의례를 했습니다.
사회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민주화운동때 라마승들도 참여했나요?
개혁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단식농성을 할 때 라마승들이 가서 불경을 외웠습니다.
민주화운동때 많은 라마승들이 '종교의 자유'를 내걸고 시위에 동참했다. 새로운 민족정체성이 막연하던 당시 불교는 새로운 대안적 질서를 이념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Jasper Becker는 The Lost Country에서, 몽골의 불교는 사회주의를 대신해 도덕적 기준이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하지만 간투무르는 그 대열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사회주의 행정 체계의 고위 관료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회주의 시대의 억압이나 저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현재 불교 사원이 몇 개나 있나요?
전체적으로 100여개의 사원이 있고 울란바타르에 20여개가 있습니다.
중앙 종단이 있어서 모든 사원을 관리하나요?
불교 회의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각 사원은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골 라마승과 도시의 라마승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별 차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도시 라마승들이 더 많이 배우겠죠. 약 100가지 정도를 배웁니다. 그러니 시골 라마승보다 도시 라마승들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고승들이 도시에 더 많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 사원의 자율성이 보장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몽골 불교를 대표하는 세력은 간단사이다. 간단사는 사회주의 시기에 유일하게 합법적 종교활동을 보장받은 탓에 민주화 이후에도 불교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를 아우르는 종단 체제가 아직 정비되어 있지 않아 각 지역 사원들은 상대적 자율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원에 들어가 승려 자격을 얻는 것도 각 사원에서 인정한 후 간단사로 통보하는 일종의 '신고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라마승 Gantumur와 흑샤먼 Inkhjaargal>
인터뷰 중간에 한 여성이 간투무르를 찾아왔다. 간투무르는 그녀를 데리고 나가 잠시 후 돌아와서는 그녀를 잉흐자르갈에게 소개시켜줬다.(잉흐자르갈은 사원에서 나온 다음 "샤먼이 더 힘이 세므로 간투무르가 그녀를 자신에게 맡겼다."고 설명했다.) 그 내막이야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샤먼과 라마승이 의뢰인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민간신앙적 면모를 깊이 체현하고 있는 불교에서야 특이할 것이 없지만, 잉흐자르갈이 불교와 적대적인 흑샤먼 전통에 속한다는 점에서 간투무르와의 관계는 깊이 분석해야 할 내용이다.
인터뷰를 마친 후 간투무르의 안내로 사원 경내를 한 번 더 돌아본 후,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사원을 빠져나왔다.
다쉬 푼레브 사원은 간투무르의 '사설 사원'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와 헤어진 후 잉흐자르갈에게 그 점을 말했더니, 사원에 있는 다른 라마승들은 일종의 '직원'처럼 간투무르로부터 월급을 받는다고 대답했다. 간투무르의 게르가 사원 경내에 있는 것도 사원의 사설화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함께 식사하자고 했지만 잉흐자르갈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겠다며 들어갔다.(밧조릭은 몽골 사람들이 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선호하는 까닭은 돈 때문이 아니라 "집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늘 우리가 식대를 치르는데도, 기회만 되면 자기 집에 가서 식사하고 다시 나오곤 했다.) 우리는 식사 전에 체데브 교수 댁에 먼저 전화했다. 그의 딸 완치크마는 아버지가 오늘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면서, 같은 고향 출신 샤먼도 함께 불렀다고 전해줬다. 우리는 6시 경에 방문하겠다고 약속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비프 스테이크와 커피를 시켰는데, 손바닥만한 스테이크 두 조각과 밥이 커다란 접시 바깥으로 넘칠 만큼 푸짐했다. 달려드는 파리를 연신 쫓으며 먹어야 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