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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1 10:52



7월 7일

 

오늘은 오전, 오후, 저녁 모두 중요한 만남이 있어 바쁘다. 6시. 가늘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은 수량으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울란바타르 13구역에 있는 불교학자 Dolgorun Tsedev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는 미리 깨끗하게 차려놓은 식탁 상석에 앉아 우리를 정중히 환영해주었다. 영어로 환영과 답례의 인사를 나눈 후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식탁을 함께 한 다크마의 언니 완치크마에게 다크마와 닮았다고 했더니 정말이냐며 웃는다.

 

체데브는 The Zanavajra Buddhist University의 총장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승가대학 정도 되는 셈이다. 그는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면서도 샤먼들과도 교류하고 있었다. 체데브는 우리를 위해 헙스걸 아이막 다인데르흐 지역의 기품있는 노 샤먼 쟘빈(Zambin)을 초대했다. 체데브와 동향 친구인 쟘빈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샤머니즘을 연구하고 이었다. 체데브는 코담배를 권하면서 몽골 샤먼들 중에 다인데르흐 샤먼만이 불교와 합쳐진 황샤만이라고 설명했다.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체데브의 부인이 준비한 만두국과 몽골 음식들을 먹었다. 귀중한 손님을 맞는 태도로 정성껏 차린 음식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특유의 양고기 냄새가 곤혹스럽긴 했지만 준비한 마음을 생각해 '성의껏'(?) 먹었다. 쉽지 않다. 음식 문화, 미각의 취향이 이렇게 다르니...

 

식탁에서 쟘빈은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진 인류학자 푸렙(O. Purev) 교수를 언급하면서, 그가 샤먼들을 많이 연구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르하드 샤먼(흑샤먼)에 치우쳐 연구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흑샤먼 전통만이 샤먼 전통의 전부가 아니라고 여기는 그는 다인데르흐 샤먼에 대해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그 책을 선물로 주었다.

 

쟘빈이 우리를 위해 다인데르흐 샤먼의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체데브의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체데브의 서재에는 불교 여러 신들의 그림과 샤먼의 거울, 엉거트상들이 걸려 있었고, 가내의례를 하는 작은 신단에 향과 음식 그릇이 놓여 있었다.

 

 

<Tsedev교수의 서재>

 

<Tsedev교수의 신단>

 

<무가를 준비하며 향을 피우는 Tsedev교수와 Zambin>

 

<무가를 부르고 있는 Zambin>

 

쟘빈은 편하게 앉은 자세로 무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는 부드럽고 평화로웠다. 다르하드 샤먼들의 격한 노래나 춤동작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그런 느낌을 이야기했더니 다인데르흐 샤먼들에게도 격렬한 춤과 노래가 있지만 오늘은 조용한 것을 택했으며, 또 엉거트도 부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쟘빈은 격렬한 샤머니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외국인들은 미친 것처럼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샤머니즘의 전부가 아니야. 그들은 춤추는 것만 보고 싶어하지. 그러나 굿은 춤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라네. 시와 노래, 북, 춤, 의상 등 모든 요소가 합쳐져야 진정한 샤먼이지.

진정한 샤먼? 그렇다면 가짜 샤먼도 있다는 뜻인가?

    지금 샤먼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말 엉거트가 들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아. 대부분 흉내만 내지. 엉거트는 장난감이 아니야. 사브다크도 요즘 샤먼들을 좋아하지 않지. 샤먼은 아무나 하는게 아냐. 라마승이야 공부만 하면 누구든 될 수 있지만, 샤먼은 자연과 조건이 맞아야만 될 수 있으니까..

    다인데르흐 샤먼과 다르하드 샤먼의 차이는 뭐죠?

    같은 헙스걸 지역의 다인데르흐 샤먼과 다르하드 샤먼은 사이가 좋지 않았어. 원래는 다인데르흐가 몽골 샤먼의 중심이었고, 불교가 들어와 황샤먼과 백샤먼이 불교와 합쳐지자 흑샤먼들은 도망가 분리 되었어. 이 흑샤먼들은 '힘이 더 세므로' 사람들이 더 무서워했지.

황샤먼인 쟘빈이 황샤머니즘을 옹호하면서도 흑샤먼들의 파워를 인정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것이었다. 흑샤먼들이 더 영험하다는 인식은 일반인들이나 종교인들 모두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자연과의 친화성을 보다 강조하는 흑샤먼들의 종교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Tsedev 교수>

    (체데브에게)티벳 불교와 몽골 불교는 어떻게 다른가요?

    불교는 원래 티벳에서 들어왔지만 방법, 소리내는 것이 몽골식이야. 지금 불경을 티벳식으로 읽는 것은 바양홍고르 아이막의 한 사원 뿐이지. 그것도 사회주의 이전 뿐이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아.

    불교는 샤머니즘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

    불교와 샤머니즘은 서로 영향을 미쳤고, 다인데르흐 샤먼과 불교는 합쳐졌어. 물론 처음에는 샤먼들이 불교에 적대감을 가졌지만, 불교는 샤먼의 노래와 주문 등에 영향을 미치며 가까워졌지. 특히 만주가 몽골을 지배하기 위해 불교를 지원하면서는 샤머니즘의 불교적 변화가 더욱 강해졌지.

그는 사회주의 이전에는 다르하드 샤먼과 불교가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불교와 경쟁할 만큼 샤먼들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체데브는 몽골인들에게는 불교와 통합된 다인데르흐 샤먼이 가장 맞다고(올바르다고) 주장했다.

 

 

<불교학자 Tsedev와 황샤먼 Zambin>

 

라마승과 샤먼들이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기까지는 숱한 갈등과 대립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특히 정치권력의 일방적인 불교 지원의 결과로 주변화된 샤머니즘은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생존을 지속해야 했고, 불교의 신격을 수용함으로써 불교적 성향의 황샤머니즘으로 유지되는 길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흑샤먼들은 끝까지 불교와 적대적 관계성을 형성하고 대립했다. 쟘빈이 들려준 헙스걸의 전설도 불교와 흑샤먼들의 불편한 관계를 반영했다.

    옛날에 다르하드 샤먼 하나와 라마승 한 명이 싸웠어. 샤먼은 부적을 보내 라마승을 저주했지. 그때 라마승은 불경을 읽고 있었어. 며칠 후 다르하드 샤먼의 배가 부르더니 갈비뼈가 아프기 시작했지. 그래서 샤먼은 라마승에게 사람을 보내 "잘못했다. 내가 졌다."고 사과했지만 라마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결국 용서받지 못한 샤먼은 배가 터져 죽고 말았지. 지금도 다르하드 샤먼들의 무가에 라마승을 나쁘게 묘사하는 가사가 많아.

쟘빈은 다인데르흐 지역에서 전해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다인데르흐 지역에 가면 커다란 동굴이 있어. 그 동굴에 들어갈 때 나쁜 마음을 가지면 나오지 못하게 되지. 실제로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 하나가 그 동굴에 들어갔다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고, 입양했던 아이들 마저 군대에서 죽고 말았어. 그 동굴에는 자궁 모양의 형상과 어머니 젖가슴 같은 바위가 있어, 거기에서 물이 흘러나와. 색은 젖 같지만 맛은 그냥 물맛이야.

또 그 동굴과 관련되어 전해져오는 징기스 한의 전설도 들려줬다.

    징기스 한의 막내 딸을 다인데르흐 샤먼이 납치하자 징기스한이 화가 나서 쫓아가는 중에 몇 가지 물건을 떨어뜨렸어. 그곳들을 지금도 그 이름으로 부르고 있지. 예를 들면 '활을 떨어뜨린 자리' 하는 식으로. 징기스한이 동굴에 들어가니 샤먼이 바위로 변신했지. 그러자 징기스 한은  그의 힘을 인정하여 딸과 결혼하도록 해주고, 그 지역 사람들을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보장했어.

그의 이야기는 매우 혼란하게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나이든 할아버지의 '삼천포식' 이야기 보따리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며칠 뒤 그를 다시 만나 모호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다시 확인해보니, 엉성하게 들렸던 이야기들이 실은 다인데르흐 지역에서 라마승과 샤먼들이 겪은 상호 융합을 보여주는 역사적 과정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체데브에게)몽골의 불교가 사상적으로 티벳불교에 비해 새롭게 발전한 부분이 있나요?

    몽골 라마승들은 불교 사상을 발전 시켜서 5천 가지 '소다르'를 썼어. 제 5대 달라이 라마가 와서 토론을 한 후 몽골 라마승들이 티벳 라마승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인정하기도 했지. 그래서 티벳 라마승들이 화가 나서 돌아갔지. 또 알샤 지역의 단더르라는 이름의 몽골 라마승이 1750년대에 티벳의 사원에서 공부를 했어. 그는 자르샤 지역의 사원에서 일종의 박사학위를 받았지. 그 때 300명의 티벳 스님들이 질문하는 모든 문제에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어. 또 1937년에는 동(東) 고비 아이막의 샤르더리뎅댕이 여덟 꾸러미의 주석을 썼지. 특히 그가 쓴 '자비(compassion)'라는 시를 읽고서는 지금의 달라이 라마도 눈물을 흘렸지.

    어떤 신격이 몽골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있나요?

    각 가정에서 자기에 맞는 신격을 섬기지. 하지만 마하칼라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어. 샤먼들도 그 신을 섬길 정도니까.

한편 쟘빈은 요즘 샤먼들의 실태를 다시 한번 강하게 비판했다. "재능없는 사람이 샤먼 흉내내다 죽을 수도 있어. 엉거트는 장난감이 아니야. ..." 그는 전통문화의 고수자답게 네오 샤머니즘을 경게했다. 그는 다인데르흐 지역의 그림을 가지고 있으니 다음에 찾아온다면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쟘빈은 젊은 사람들이 과거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어 기쁘다면서, "과거를 모르면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의 종교를 묻길래 기독교라고 대답하니 여러 종교를 아는 것은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중에 자기는 샤머니즘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쟘빈, 체데브 교수와의 만남은 몽골의 샤머니즘과 불교가 세계종교 대 주변화된 종교현상으로 분리되지 않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물론 몽골 샤머니즘 내부의 흑샤먼과 황샤먼의 차이를 불교와의 관계(긍정/부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몽골에 들어온 티벳 불교가 이미 샤머니즘적, 민간신앙적 차원을 강하게 포함했다는 점에서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역성'의 문제가 더 지배적 요인일지도 모른다 - 대개 흑샤먼 전통이 북부 타이가 삼림지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 등 -. 어쩌면 불교와 샤머니즘의 관계는 잉흐자르갈과 간투무르의 거래(?)가 체데브와 쟘빈의 엘리트적 우정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아닐까?

 

밤이 깊어져서 이만 헤어지기로 했다. 체데브 교수는 불교관련 저서들을 선물로 주었고, 필드워크 중에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인자한 모습의 쟘빈도 언제든 다시 만나면 더 자세하게 샤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격정의 시절을 지나 관조하듯 살아가는 두 노인의 웃음이 넉넉해 좋았다.

 

경일, 혼란에 빠진 날 - 전통과 현대

 

피곤하다. 하루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밧조릭도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듯 했다. 어려운 종교 용어들을 사용하며 통역하기란 쉽지 않겠지. 한국어로 인터뷰를 해도 두 시간 이상이면 피로감을 느끼는데...

 

지금까지 만난 샤먼과 라마승, 치유자들은 종교적 혼합주의의 극심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은 전통 샤머니즘과 네오 샤머니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소위 전통을 고수하는 쟘빈이나 체데브 같은 종교인들조차도 이미 불교와 샤머니즘의 '수준높은' 융합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몽골 종교들의 상호 융합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통과 현대를 경계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사란다와나 잉흐자르갈 같은 네오 샤먼들의 의례와 종교적 의미체계가 새로운 고안물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전통을 위반하는 현대적 '사이비'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의례상의  전통이란 전적으로 과거의 것 그대로인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대개 전통이라 함은 현대의 선택적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즉 '전통'은 과거사에 고정된 것이라기보다는 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 만들어지고 재해석되는 것 혹은 최소한 '선택적' 전통이다. 여기에서 "전통과 다르다!"는 발견은 공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적 전통, 고안된 전통의 발견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들이 "내가 기대했던" 모습을 위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불만이라면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한 외부자의 전횡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 될 것이다. 불편함의 원천은 전통적 종교성의 긍정적 함의가 현대적 욕망과 갈등에 의해 일그러지고 있다는 윤리적 판단 때문이다. 소위 전통 종교가 지녀온 덕목들이 자본주의의 유입에 의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윤리적 문제의식이 정당한가 하는 점이다. 나는 종교를 하나의 문화 현상중 하나로 관조하지 못한다. 종교는 "뭔가 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내게 있어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사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함에 대한 비판"이지,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지금 몽골의 종교에 윤리적 책임성을 요구하고 있는 나의 태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 것인가?

 

머리가 아프다. 앞으로의 필드워크가 고통의 스트레스를 수반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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