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종교적 인간탐구 (519)
사색 (340)
사진 (63)
공동체/인터뷰/토론 (17)
말씀새김 (6)
칼럼 (39)
여행 (30)
기도 (17)
음악 (7)
공부 (0)


rss
tistory
2010/01/01 11:13



7월 8일

 

일요일 아침. 미역국과 오이김치(?) - 경비 절약을 위해 오이와 양파에 고추장을 버무려 만들었더니 맛이 무척 심심했다. 그래도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었다. 김치를 먹을 수 있었던 것은 2주 뒤였다. -, 김 몇 장 놓고 하느님께 "편견 없이 몽골인들의 삶과 신앙을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제 필드워크가 고단했는지 몸은 찌뿌드드하고 하늘엔 구름도 많았지만 마음은 상쾌한 아침이었다.

 

며칠 째 울란 바타르 시내를 돌아다니며 매연에 찌들다 보니 한없이 넓고 푸른 초원이 그립다. 지난 해 차를 타고 달리고 또 달려도 끝없이 펼쳐지던 광대한 너비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게는 자연보다 인간이 더 흥미롭지만, 말없는 자연은 인간보다 편안하다. 낮은 키 풀잎 사이로 뛰고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듣고 진한 풀향기를 맡고 싶은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힘겹기 때문일까. 하지만 자연을 동경할 시간은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다시 백팩을 메고 소우주, 몽골인들의 신앙에 참여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라마승 세르릉

 

 

<세르릉이 사는 아파트>

 

오늘의 첫 만남은 지난 해 '나린텔 솜' 여행을 함께 했던 젊은 라마승 세르릉이다. 밧조릭과 함께 울란바타르 10구역에 있는 그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여전히 복스럽게 생긴 세르릉과 그의 누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편한 실내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난 해 나린텔 솜에 동행했을 때 그는 지역의 귀빈이었다. 어디에서든 상석에 앉았고, 사람들은 그 앞에 줄을 서서 복을 빌었다. 그러나 1년 만에 만난 그는 평범한 청년 종교인의 모습이었다.(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2000년 여름 나린텔 솜에서>

 

우리는 신단의 신들에게는 술과 담배, 하닥을 바치고, 그에게는 지난해 나린텔 솜에서 찍은 사진 액자를 선물했다. 그건 개울가에서 신자들에게 주려고 사탕에 복을 불어 넣어주던 장면이었다. 사진을 본 세르릉은 "남들이 보면, 내가 과자를 좋아하는 라마승인줄 알겠다."며 즐거워했다.

 

 

<세르릉의 신단>

 

간단사에 나가던 그는 인도 다람살라로 유학 가기 전 잠시 쉬면서 오는 신도들을 맞아 종교적 의례를 베풀고 있다. 큰 호랄(법회)이 있을 때는 간단사에 가서 기도한다. 개인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신도들은 주로 병이나 사업문제를 가지고 찾아온다. 세르릉의 방은 작은 개인 사원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단은 화려하고 풍성했다. 상단 위쪽에는 그가 중요하게 섬기는 곰보 신이 있고, 그 아래는 백발노인 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신격은 함께 있어야 한다.

 

신단 왼편 벽에는 하얀 눈이 덮인 오트공텡그리 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이 산은 복드항 산, 부르한 칼둔 산과 함께 몽골의 성스러운 세 산 중 하나이다. 그는 그런 성스러운 산에 가면 '엉거트'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샤먼이 아니기 때문에 대화할 수는 없다. 왼쪽의 소녀 그림은 죽은 그의 누이동생 초상화이고, 오른쪽 그림은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이다.

 

 

<오트공텡그리 산 그림과 누이 동생, 아버지 초상화>

    당신은 어떤 신을 섬기나요?

    내가 중요하게 섬기는 신은 곰보(크)에요. 몽골이 어려웠던 시절 아브다상이 티벳에서 모셔온 신이죠. (내게) 부처와 곰보는 차이가 없어요.

불교 승려에게 어떤 신을 섬기냐고 질문할 수 있는 것은 몽골 라마들이 불교적 판테온(萬神殿)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들의 무질서한 난장은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신들이 있지만, 부처님이 최고신이에요. 부처님이 있어야 다른 신들도 생길 수 있습니다. 부처님 외 다른 신들은 높고 낮은 계급이 없어요.

붓다 외의 모든 신은 평등하다는 까닭은 "인간이 그 신들에게 기도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그 순간에는 그 신이 가장 중요한 신이다. 그러므로 신들 사이의 위계는 고정적으로 합의될 수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붓다가 최고신이라는 언명도 절대적일 수 없을 것 같다. 한 신자가 그린 타라에게 기도하고 있는 때 그 신은 붓다보다 중요할 테니까.

 

 

<White Old Man>

세르릉은 신단 한 가운데에 81가지 나쁜 것에서 인간을 보호한다는 '백발노인(White old man)'도 모시고 있다. 외양상 도교 풍의 이 신은 돈을 벌지 못하거나 가축이 병드는 것 같은 나쁜 운을 막아 준다. 세르릉의 신단 자체가 작은 만신전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불교 신자들도 텡그리를 섬긴다고 설명했다.

    특별히 불교 신자들에게 인기 있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우리 속담에 '성냥 하나에도 신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는 '자기에게 맞는' 신을 중시합니다.

    그래도 더 많이 섬기는 신이 있을텐데요.

    특히 '그린 타라'를 친근히 여기며 섬깁니다. 그린 타라는 어머니 신이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는 자식에게 나쁜 것을 주지 않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분이죠.

원래 티벳 신격인 타라(Tara,多羅)는 티벳 민중의 고통을 보고 관음보살이 흘린 눈물 속에서 생긴 보살이다. 한없는 자비의 화신인 타라는 낮에는 흰색, 밤에는 녹색으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연민의 눈물 속에서 탄생한 신 타라... 사랑스럽다.

 

 

<Green Tara>

 

세르릉에게도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원인을 무엇이라고 여기는지 물어봤다. 그는 우선 사람들이 좋지 않은 말을 하면 정말 안 좋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자꾸 '춥다, 춥다' 말하면 정말 추워져요." 그러나 심각한 자연재해는 "땅의 로스에게 불경을 외며 허락받지 않고 나무를 베서 백발노인이 벌준 것"이라고 '종교적으로' 설명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요. 내 친구 셋이 시골을 여행하다 그만 성스러운 나무를 베어 불을 땠어요. 그 다음날 한 친구의 가축이 다 죽어버렸고, 다른 한 친구의 아들은 피부병에 걸렸고, 나머지 한 친구는 암으로 죽어 버렸죠. 로스가 들어있는 나무를 베었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재앙이 닥치면 의례를 통해 로스의 화를 풀어야 한다.

    벤 나무에 가서 용서를 빌고 불경을 외면서 우유와 종이로 싼 모래를 바쳐야 합니다. 내가 직접 그 의례를 한 적도 있어요.

이처럼 대부분의 몽골 종교인들은 자연재해의 원인은 인간의 잘못에 대한 신의 징벌로 해석한다. 이런 종교적 해석은 생태계 위기를 정서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도 포함한다. 즉 신의 분노가 벌을 가져왔으니, 용서를 빌면 그 벌을 무효화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태학적 파국의 현실에서 이런 신앙은 얼마나 무력할까. 하지만 신앙, 자연에 대한 경건성의 회복 외에 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자연에 대한 근본 자세가 변화하지 않는 한 생태 파국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그의 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한국 스님들을 보면서도 느끼지만 스님들이 셀폰으로 전화하는 모습은 조금 어색하다. 몇 년 전 지리산 쌍계사 경내에서 공중전화 박스에서 줄 서 기다리는 데, 내 앞 젊은 스님 한 분이 전화하더니 "엄마, 나야. ... 응, 좋아. 밥도 잘 나오고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 모습이 싫지 않다. 하지만 낯설다. 지독한 관념의 힘... 세르릉은 조용조용 대화한 후 전화를 끊고 불경을 외웠다.

 

 

<신도와 전화하는 라마승>

 

 

<방금 전 통화한 신도를 위해 불경을 외는...>

 

    새 집으로 이사한 신도 한 사람이 몇 시에 들어가면 좋을지 물었어요. 그래서 그의 운을 보고 오후 3시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알려줬어요. 그리고 내가 불경을 외는 동안 우유를 뿌리라고 말했어요.

신의 숨결은 전파(電波)를 통해서도 전달된다. 이동통신을 통해 초월과 대면하는 종교적 인간의 모습이다.

 

그는 결혼식, 장례식에도 참여하여 불경을 읽어주며 복을 빌어 준다. 이런 라마승의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룬'이라는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 자격증은 스승이 주며 꼭 불교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가능하다. 아무튼 그는 1992년에 간단사 불교 대학에서 룬을 받았다. 그가 라마승이 된 것은 전생의 서원과 불교신자였던 부모 덕이다.

    사회주의 때도 어머니는 비밀리에 불경을 읽었어요. 난 전생에 스님이 되겠다고 서원했고 부모 모두 불교 신자였으므로 라마승이 되었어요.

그가 앉은 탁자에는 '만드린'이 있었다. 그것은 작은 돌 위에 천으로 만든 원이 세 개 포개져 있는 모양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한다. 그 한가운데에는 차크라(법륜)가 꽂혀 있었다. 그런 차크라를 걸어놓은 택시운전사들이 많더라고 이야기하자, 차크라는 운전대나 바퀴하고 비슷하기 때문에 걸어놓는 것이고, 그 목적은 안전하게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륜과 운전대... 재미있는 해석이다.

 

그는 샤머니즘을 부정하지 않는다. "샤먼도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해요." 뿐만 아니라 로스-사브다크 같은 샤머니즘의 전통적 신격들도 중요하게 여긴다.

    불교는 다른 종교에서 좋은 것은 수용하고 나쁜 것은 버렸습니다. 몽골의 종교인 샤머니즘에서도 땅의 주인과 불의 신에 대한 숭배를 수용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샤머니즘 신격의 힘의 차원(영험)에 대한 인정도 포함한다.

    엉거트는 힘있고 훌륭해요. 전에 시골의 늙은 샤먼을 만났습니다. 그는 잔을 하늘로 던져 그것이 땅에 떨어질 때 거꾸로 누우면 그 사람이 죽는다고 했는데 세 번 다 그렇게 되었고 결국 죽었어요.

하지만 엉거트에 대한 신앙이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신앙할 때 무엇에 대해 믿는지는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 엉거트는 반드시 샤머니즘의 신격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신바람', '신명'을 일상적 개념으로도 사용하듯이 몽골인들도 '영감'과 비슷한 의미로 엉거트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바조릭은 "시인들이 좋은 시를 쓰게 되면, 엉거트가 들어와 잘 쓰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흔해요."라고 보충했다.

 

 

<연구 열심히 하세요...>

 

세르릉은 우리의 연구 주제를 물어본 후 불교를 연구하는 영라에게는 불교 여신 그림과 노란 하닥을,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내게는 아르츠(향)와 푸른 하닥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노란 하닥은 겔룩파를 상징하고 푸른 하닥은 샤먼이 섬기는 텡그리를 상징한다고 설명해줬다. 우리는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그의 집을 나섰다.

 

 

<세르릉의 집을 나와서...>

 

간단사에서의 휴식

 

 

<간단사 중앙 불전>

 

 

<간단사 경내>

 

 

<간단사 경내 비둘기들>

 

일요일 아침부터 우리를 도와주느라 쉬지도 못한 밧조릭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산책 삼아 간단사를 다시 방문했다. 법회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간단사 중심 큰 길은 한산했다. 하지만 작은 사원 건물들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모여 있었다. 신심 좋은 사람들 덕에 먹고 사는 비둘기들도...

 

 

<의례용 초를 만드는 신도>

 

한 건물에 들어가니 한쌍의 남녀가 의례를 위한 초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초받침에 촛물을 붓고 심지를 말아 넣은 후 식혀서 응고시키는 것이었다. 안쪽 불당에는 어린 라마승들이 앉아 쉬고 있길래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안 된다고 심하게 제지한다. 그런 외적 행위의 규제를 통해서라도 종교적 경건성을 내면화하려는 것일까.

 

 

<쉬고 있는 어린 라마승들>

 

 

<축복한 물을 마시는 여성>

 

 

<가격이 정해져 있는 불경 읽기표>

 

 

<불경읽기를 신청하며 돈을 내는 사람들>

 

다른 건물에 들어가니 불경을 읽어 달라고 신청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아예 각각의 경전 가격을 따로 책정해 놓은 표를 걸어놓고 있었다. 가장 비싼 것은 알탄 간쪼르(금강경)로 5천 투그릭이었다. 사람들은 원하는 불경 제목을 적은 후 돈과 함께 신청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은행 창구와 흡사하다. 그 반대쪽에서는 어린 라마승들이 향과 노란색 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을 작은 박카스병에 담아가거나 그 자리에서 마셨다.

 

 

<기도 도르레와 오체투지 용 나무판>

 

 

<기도 통을 돌리는 사람들>

 

 

<기도하며 사원을 도는 사람들>

 

 

<기둥을 돌며 기도하는 사람들>

 

 

<향로를 도는 사람들>

 

바깥, 프레이어 휠이 있는 곳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열을 지어 통을 돌리고 있었다. 간단사에서는 도는 행위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기도통을 돌리고 나서는 사원 벽을 손으로 만지며 또 한 바퀴 돈다. 도는 과정에서 만나는 신들에게는 잠시 멈춰 머리를 조아리며 존경심을 표하다가 다시 돈다. 간단사 중앙 불전(Janrasic) 쪽 높다란 나무기둥에서도 사람들은 그 둘레를 빙글빙글 돌면서 머리를 대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전 앞 향로에서도 사람들은 손을 댄 채 돌고 있었다. 그 모든 행위의 공통점은 오른쪽 방향으로 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에서는 어떤 사람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홀수 번 도는 것이 존경의 인사법이라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부처님을 모신 사물, 공간을 돎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탑돌이 신앙처럼, 소망을 담은 기복 의식이 더 강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에 대한 경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원 경내의 불교대학 쪽 입구로 나오니 문 옆에 세 샤먼이 앉아서 점을 쳐주고 있었다. 어떤 여자 샤먼은 서너 명의 몽골인들에게 동물의 견갑골로 점을 치고 있었고, 한쪽에는 손님 없는 늙은 샤먼이 염주를 든채 앉아 졸고 있었다. 몽골 최고의 엘리트 사원 앞에서 특별한 제지를 받지 않고 점을 치고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견갑골로 점 쳐주는 샤먼>

 

 

<피곤한 듯 졸고 있는 노 샤먼>

 

간밧과 락슈미

 

 

<간단사에서 수흐바타르 광장 가는 길>

 

 

<수흐바타르 광장>

 

한참을 걸어 수흐바타르 광장까지 와서 오페라 하우스 노천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만남의 긴장감에서 잠시 해방되어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다. 넓은 광장도 권태롭고 평화롭다. 늘어지는 시간의 감각이 좋다.

 

오후 3시. 간밧을 만났다. 그는 교회에 다녀온 참이다. 물론 그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단지 친교를 위해서 그곳에 간다. 간밧은 락슈미라는 유고슬라비아인 친구를 만나러 가자고 권했다. '하레 크리슈나(Hare Krishna)' 멤버인 락슈미는 자발적 선교사로 몽골에 왔다. 그는 현재 영어를 가르치며 선교를 모색하고 있고, 불교 신자인 몽골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다. 몽골에서 하레 크리슈나 멤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지난 해 인도 브린다반에서 만났던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흥겨움과 자유로움이 떠올랐다.) 간밧과 우리는 함께 버스를 타고 그의 집이 있는 1구역으로 향했다.

 

그의 아파트에 들어가니 예쁜 꼬마 아이와 그의 부인, 그리고 여행 온 프랑스인 친구 둘이 맞아주었다. 락슈미는 먼저 요구르트와 빵으로 손님을 대접했다. 새콤할 뿐 달지 않은 요구르트 맛이 좋다. 난 단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만 그런 것도 아니지...

 

거실 한쪽에는 하레 크리슈나의 설립자 사진이 걸려있었고 그 아래로는 소박한 신단이 있었다. 하지만 그 옆으로는 달라이 라마 사진이, 신단에는 차크라 등 불교 상징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의 몽골인 아내는 자신의 불교 신들을 위해 음식을 바쳤다.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화합하여 가정을 꾸려가는 그들의 삶이 아름답다.

 

락슈미는 열렬한 하레 크리슈나 멤버답게 우리에게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전하기에 분주했다. 그는 바가바드 기타와 여러 가지 선교 책자들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명상과 요가, 깨달음의 길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문제, 통일, 종교간 평화, 명상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인도에서도 4년 정도 지내며 종교적 수행을 했다.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선교 여행을 하는 그의 사진을 보니 인도가 그리워진다. 그리움이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걸까. 낯선 곳에서 다른 낯선 곳이 그리워진다.

 

그는 한국에서도 선교를 하고 싶어한다. 한국에도 인도 전통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자 무척 흥미로워 했다. 내 동료 중에 하레 크리슈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더욱 관심을 보이며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정신적 유목민인가 보다. 끊임없이 떠나려 한다. 몽골인들에게 유목을 강제한 것이 자연이라면, 락슈미의 유목적 인생을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락슈미 가족의 삶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그는 친절했고 온화했으며 유머러스했다. 락슈미는 이제 그만 떠나려는 우리를 붙잡아 저녁 식탁에 앉게 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기 전 각국 언어로 감사를 표했다. 몽골, 한국, 프랑스, 유고 네 나라 젊은이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기도하며 교제했다. 일요일. 아름다운 안식의 경험이었다.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