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 10일
잉흐자르갈은 오늘도 굿을 언제 시작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 느슨하고 분방한 태도를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녀는 한다 안 한다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굿을 하긴 할 테니까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오늘도 굿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상 그녀와의 일정을 포기한 우리는 수미야를 만나기 위해 어제 방문했던 아파트로 다시 갔다.
오늘은 다행히 집에 있는 수미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지난 해 우리를 만났던 것과, 누흣드 산에서 했던 굿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사진(지난 해 그녀의 굿을 찍은 것) 액자와 술, 담배, 하닥을 선물했다. 반색하며 사진을 보던 그녀는 한쪽에 개어 놓은 무복을 보여주며 사진 속 무복이 그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을 담은 푸른 빛 무복을 보니 지난 해의 만남이 더 선명하게 기억되는 것 같았다.
수미야의 라이프 스트리 - 2000년 필드워크 시 인터뷰
오보르항가이 아이막 출신인 수미야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다. 가계에서 샤먼 능력을 전수받았지만, 사회주의 시대에는 샤먼 일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레를 배웠고, 후에는 발레 대회 심사위원장을 할 정도로 무용 분야에서 성공했다. 그녀의 남편은 30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홀로 딸 하나와 아들 둘을 길렀고, 지금은 두 명의 손자가 있다.
그녀가 샤먼이 된 것은 9년 전이다. 어렸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35세 때에 아파 누워 있다가 꿈에 “일어나라”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중에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의례를 한 후에 평안을 되찾았다. 그녀가 2년 동안 무척 아팠을 때 그녀의 스승인 발렌티나는 그것이 무병이고 샤먼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1994년 11월에 샤먼이 되었다. 발렌티나가 조무들의 도움을 받아 집례한 입무 의례에서 수미야는 5,6일 정도 심한 두통을 겪으며 의식을 잃기도 했다.
샤먼이 된 수미야는 그후 여러 스승을 모셨다. 발렌티나 발다키가 첫 스승이었고, 두번째 스승은 부리야트 샤먼 바스드 이바노비치였다. 수미야는 그녀가 자신에게 지식과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스승은 헙스걸 호수 동편에 사는 롭스타이였다. 그는 80이 넘은 몽골 남성 샤먼이다. 수미야는 그를 스승으로 선택한 이유를 “나는 몽골인이니까.”라고 대답했다.
현재 그녀는 화이트 샤먼으로서, 몽골샤먼협회(Center for Mongolian Shamanism)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미야의 굿 - 2000년 여름, 누흣드 산
우리 일행은 수미야의 아파트를 방문해 인사한 후 정중하게 의례를 요청했다. 수미야는 다음 날 오전 11시 누흣드 산에서 굿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도 성스러운 산으로 숭앙받는 누흣드산은 공항에서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가는 길 가운데 있는 산이다. 그곳에 있는 누흣드 호텔은 사회주의 시절 공산당 고위간부들의 휴양소였다가 개방 후에 호텔로 변경된 것이다. 주로 부유층의 여름별장들이 호텔 주변에 위치해 있다. 누흣드 산 입구 너른 들판에는 나담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게르촌이 임시로 조성되어 있었다.
다음 날 그녀의 아파트로 다시 찾아간 우리는 그녀의 무복과 의례 도구를 차에 싣고 누흣드 산으로 향했다. 이날 굿에는 조무 한 명이 참여했고, 수미야의 어린 손자도 따라왔다. 챙이 넓은 흰 모자를 쓴 수미야는 소풍 가듯 들떠 있었고, 산 입구 게르촌을 들러 잠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의 그녀는 평범한 몽골 여성일 뿐이었다.
하지만 굿을 준비하면서부터 그녀의 카리스마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미야는 파란색 무복을 입고 미국 샤먼이 선물했다는 분홍색 허리띠를 둘렀다. 그리고 파란 두건과 검은색 리본이 달린 머리띠도 착용했다. 파란 무복을 준비한 이유는 그날 하늘이 맑기 때문이었다. 수미야는 다시 금빛 장식이 화려한 겉옷을 걸쳐 입었고, 손바닥만한 구리거울(toli)과 요령을 목에 걸었다. 거울은 북방 샤머니즘에서 매우 오래된 무구로, 질병을 진단하거나 질병의 신령을 사로잡고, 여러 가지 공격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한편 의례용 신발을 가져오지 못한 그녀는 촬영 시 발 아래는 찍지 말라고 특별히 주문했다.
굿은 산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파란색 하닥을 나무에 묶어주고 나무의 갈라진 틈에 사탕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굿을 참여한 사람들 중 김성례 교수와 김현미 교수에게 흰색 하닥을 걸어 주며 “연구를 위한 길이 잘 닦여 있으니 충분히 성공할 것”이라고 축원했다. 흰색 하닥은 지혜를 상징한다.
이어서 수미야는 신들을 불러내 힘을 얻기 위해 굿할 공간에 술을 바쳤다. 작은 은잔에 따른 보드카로 ‘고시레’ 한 후 작은 스푼으로 주변 풀밭에 여러 차례 술을 뿌렸다. 그리고 허리 춤에서 꺼낸 사탕을 사방으로 던졌다. 잔의 술이 비면 다시 술을 채운 후 “신령님, 나를 축복해주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술을 계속 뿌렸다. 잠시 후 조무가 아르츠(노간주나무) 향에 불을 붙이자 수미야는 그 향을 깊게 들이마신 후 한 번 더 술을 받았다.
굿에 참여한 우리는 손을 앞으로 모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후라이, 후라이...”를 소리내 반복했다. ‘후라이(hurai)’는 신에게 ‘부얀(buyan, 복)’을 간구하는 주술적 언어이다. 수미야는 술을 한 잔 더 받아 고시레 한 다음, 목과 턱, 이마와 머리에 술을 찍어 바른 후 한 번 더 고시레 하고 술을 마셨다. 그녀는 의례에 참여한 우리에게 “바다의 진주처럼 맑고 아름답다.”고 덕담을 주었다. 우리 모두는 수미야가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때마다 그녀는 우리 각자의 나이와 띠를 물었고, 구리거울을 이마에 대며 “지식이 자라 학문에서 성공할 것이고, 모든 소원이 성취될 것”이라고 축복하는 말을 했다.
수미야는 고민이 있거나 미래를 궁금해 하는 사람의 점을 쳐주고 앞날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바쁜 일상의 힘겨움과 답답함, 과거의 나쁜 기억으로 인한 고통을 이야기했다. 잠시 침묵한 채 숲을 바라보던 그녀는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 신들은 네가 이곳에 오기까지 쭉 지켜봐오셨다. 네 부계 쪽에 종교적 활동을 했던 사람이 있고, 너 역시 종교적 직관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그럼, 샤먼이 된다는 건가?”라고 묻자, 수미야는 단호히 “샤먼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특별한 ‘정화의식’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수미야는 꽤 긴 시간동안 우리의 고민과 꿈, 기대에 대해 듣고, 진단하고, 예언했다.
상담을 마친 수미야는 갑자기 요령을 세게 흔들며 풀밭으로 나가더니, 사슴 가죽으로 만든 채찍으로 거칠게 어깨를 치며 주문을 외웠다. 그 이유는 굿 장소 옆으로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가면서 신이 오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잠시 후 나무에 보드카를 부어주고 주문을 외며 성냥을 켰다가 ‘훅’ 바람불어 끈 후 연기를 흡입했다. 그리고는 신이 평화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나를 위한 정화의식은 나무 그늘 진 풀밭에서 이루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뒤돌아서서 눈을 감게 한 후, 내게 무릎을 꿇고 앉아 눈을 감게 했다. 그녀는 내 이름을 소리 내서 말하게 했고, 잠시 후에는 두 손을 돌리면서 “후라이”를 소리 내게 했다. 수미야는 보드카를 입에 담았다가 내 얼굴과 뒷통수에 세게 몇 번을 뿜었다. 그리고 “후라이”를 빠르게 외우며 주변을 돌던 그녀는 내 앞에 서서 ‘쉬쉬’ 소리를 내며 쓰다듬듯 얼굴 가까이 손을 대더니, 무엇인가를 털어내듯 땅에다 손을 털었다. 그녀는 내게 눈을 뜨라고 말했지만, 나는 따가움에 눈을 뜰 수 없었다. 수미야는 손으로 내 턱을 올리며 눈을 크게 뜨라고 말했다. 내 곁에 있던 체첸 교수는 치유되고 있기 때문에 눈이 아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금 후 눈을 뜬 내게 수미야는 “무엇이 보이는가?” 물었다. 내 눈엔 산이 보였다. 그녀는 “산이 네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점차 쓰라림이 사라지면서 밝은 햇살아래 누운 산이 평화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미야는 내 손을 펴서 눈 가까이 대게 하고 천천히 풀밭으로 가 누워 쉬라고 말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양손을 편 채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모든 굿을 끝낸 우리는 굿을 했던 장소를 깨끗하게 치우고 산을 내려왔다. 수미야는 다시 쾌활한 몽골인 여성으로 돌아왔다.
수미야의 굿, 그녀가 내게 베푼 정화의식의 진정성은 객관적 기준으로 인정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 굿의 효과란 신자들의 믿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나는 샤머니즘의 신앙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의례 과정에서의 믿음을 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미야의 정화하는 힘, 더 정확히는 ‘자연 속의 휴식’으로의 초대는 잠시나마 내게 편안한 쉼을 주었다.
명상하는 샤먼
그로부터 1년 만에 만난 수미야는 줄리 스튜워트(사란게렐)의 책을 꺼내 그 안에 담긴 자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몽골 샤머니즘을 소개한 Riding Windhorse는 이번 필드워크를 준비하며 읽은 책이었다. 사란게렐은 반은 학자요 반은 샤먼이다. 수미야 역시 자신의 영험을 과시하는 것은 다른 샤먼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기가 샤먼 힘이 매우 강한 오보르항가이 아이막 출신이고, [징기스칸 아카데미]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정말 수상한 상이다. 만나는 샤먼마다 이 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어제도 찾아왔는데 댁에 안 계시던데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어제 자연 속에 가서 명상하느라 집에 없었어요. 요즘 며칠 동안 조용한 산에 가서 명상하면서 하늘에 있는 나의 텡그리로부터 힘을 받고 있어요.
요즘 명상을 하고 있는 산은 어디죠?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명상한다’는 그녀의 말이 신선하다. 전에 세계 샤머니즘 세미나를 하면서 주로 서구의 종교 연구자들이 샤머니즘을 격렬하고 소란한 종교현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의심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샤머니즘이 엑스타시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현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종일관 떠들썩한 난장으로만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몽골 블랙샤먼들의 의례만 보더라도 굿 과정 안에는 결렬함과 갑작스런 고요가 함께 존재한다. 고요는 격렬함 사이의 틈이 아니라 굿을 이루는 한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초기 인류학자들, 특히 식민권력의 무력을 등에 업은 연구자들은 ‘야만인’ 샤먼들에게 좀더 기괴하고 소란한 몸짓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그것은 덜 제도화된 타자의 기이함에 대한 두려움과 매혹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타자의 격렬한 ‘야만’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계몽(혹은 지배)할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의도한 것이었다. 그런 식민의 논리에 따른 ‘의도적’ 발견이 샤머니즘을 격렬한 트랜스에 경도된 종교 현상으로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내가 만난 샤먼들 대부분은 수미야처럼 산이나 들에서 조용히 명상하며 신과 만나고 있었다. 심지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금기가 있을 정도로 그들의 명상은 고요하고 고독하다. 지난 해 차강노르에서 만난 노 라마승은 지역에서 사실상 샤먼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우리 일행을 만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집 옆 초원을 조용히 거닐며 신들에게 묻고 있었다. 내가 먼발치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들어가라고 손짓하던 그의 조용한 몸짓이 기억난다. 즉 명상과 고독은 샤먼들이 자신의 힘을 갱신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또한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 기반하는 샤머니즘의 종교적 직능자들의 삶이 지독한 외로움과 격리의 고독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일반적 입무 형태이다. 나는 이러한 샤머니즘의 고요와 고독의 계기를 "Shamanic Meditation"으로 구상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샤먼들의 명상적 차원을 연구해보고 싶다.
수미야의 힘
자연의 어떤 엉거트들과 관계하죠?
자연에는 헤아릴 수 없는 엉거트들이 있어요. 나와 관계된 엉거트는 가르쳐 줄 수 없어요.
수미야의 집에는 신단이 보이지 않는다. 없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 숨겨진 비밀의 영역이 수미야의 힘을 표현한다. 드러내기보단 숨기는 것도 영험을 주장하는 좋은 방식이다. 물론 수미야는 그런 비밀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엉거트들의 의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내가 모시는 엉거트들은 사나워요. 그래서 이름도 수도 말할 수 없고, 또 보여줄 수도 없어요.”
수미야가 자기의 힘을 강조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다른 샤먼들과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녀는 다른 샤먼들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눈으로 다른 사람의 상태를 아는 것”이다. 사실 수미야의 눈은 매섭고 깊다.
수미야 역시 ‘가짜 샤먼’을 비판한다.
샤먼협회의 수흐바트는 93년에 협회에 들어올 샤먼들을 신청 받았을 때 300명이나 몰려들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가짜 샤먼들이 많아요.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무엇일까? 윤리적 차원 외에 종교적 진정성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까. 의문이다.
자연 파괴에 대한 해석
자연 재해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옛날과 달라졌어요. 옛날에는 자연의 엉거트들을 위한 의례가 많았고, 정해진 규칙대로 자연에 술을 바쳤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하지 않으므로 자연의 엉거트들이 화가 나 있어요. 또 요즘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래서 엉거트가 벌을 주고 있는 거예요. 게다가 용, 뱀, 말띠 해는 사나운 해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리고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정부에 기대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몽골 샤먼들이나 신자들에게 자연 재해의 원인에 대해 물고 대답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점차 분명하게 의식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전통적 그들’의 생각이 ‘현대적 우리’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려고 했지만, 곧 그것은 적합한 비교가 아님을 깨달았다. 몽골에서도 시골에 사는 사람들, 심지어 샤먼이나 라마승들조차도 현상에 대한 복합적 이해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경건한 종교인이 세속적 지식과 해석 방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전통과 현대의 대립을 몽골인들과 ‘나’ 사이에 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수미야 역시 샤먼다운 설명과 함께, 세속적 언어로 현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과거의 독립적이고 강인한 유목민들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거치면서 자립 능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었다. 이는 시장경제 이후 재유목화한 유목민들이 동물과 자연을 깊이 이해했던 전통적 유목 기술을 충분히 계승하지 못함으로써 피해를 입는 면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유목민들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그 개인들은 새로운 시장경제가 구성하고 있는 20/80의 선택과 배제 논리에 따라 재편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므로...
몽골 북부의 ‘다르하드’ 샤먼과 ‘다인데르흐’ 샤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다인데르흐 샤먼은 불교와 습합되어 있어요. 나도 다인데르흐의 샤먼 동굴에 가봤는데 그 아래에 라마 사원이 있었어요.
다인데르흐 샤먼이 지금 활동하고 있나요?
노르도 돌람, 히칙자르갈이라는 다인데르흐 샤먼이 있었는데 지금은 죽었어요. 히칙자르갈은 사회주의 때 샤먼 일을 하다가 3년 간 감옥에 갇힌 적도 있어요.
사회주의때 라마승은 1960년경부터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종교 활동이 그래도 보장되었던 것 같은데 샤먼은 어땠어요?
샤먼에 대해서는 종교 활동을 금지했어요.
어떤 지역의 샤먼이 더 강하죠?
샤먼마다 운명적으로 재능이 정해져 있고, 혈통과 사람 따라 달라요. 어떤 사람은 고치는 것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보는 것을 잘하죠. 그리고 방법과 엉거트의 힘도 달라요.
수미야는 ‘보는 것’을 잘한다. 그녀는 눈을 보고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했다.
화이트 샤먼인 수미야가 흑샤먼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음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상이한 샤먼 전통간의 소원함은 울란바타르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몽골 전통 사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전통의 합류는 새로운 도시 샤머니즘의 특징이 되고 있는 것일까.
수미야는 여러 스승으로부터 샤먼 일을 배웠다. 그것은 하나의 전통에서 계승되는 샤먼 방식과 다른 점 중 하나이다. 스스로 화이트 샤먼임을 자처하는 그녀가 흑샤먼들로부터도 배웠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우리가 지난 해 헙스걸에서 만났던 노 샤먼 롭스타이도 그녀의 스승이다. 이런 전통의 경계 허물기에 대해 그녀는 “샤먼에게 들어온 힘은 스승이 발전시켜주는 것일 뿐, 스승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전통적 유목민의 샤먼 신앙과 도시민의 샤먼 신앙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이제는 일반 사람들이 샤먼들 중에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신도들이 샤머니즘만 믿나요?
당신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밧조릭이 통역을 하기 전에 내가 묻는 내용을 알았다는 뜻이었다.) 나를 만나는 55 가정은 모두 샤머니즘만 믿어요. 물론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고를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 집에서는 libation을 하지 않아요.
수미야는 미국, 일본, 태국 등 여러 나라 샤먼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생명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생명이 깃든 선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요즘 시골 샤먼들이 왜 도시로 자꾸 오는 거죠?
지금은 샤먼들이 거주지를 옮길 때 해야 하는 규칙을 따르지 않아요. 오직 돈 벌러 오는 경우도 많아요.
시골에 있던 샤먼이 도시로 오면 힘든 일은 없나요?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므로 새로 간 지역 엉거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요. 마음 착한 샤먼은 그 지역의 사브다크가 받아들여 주어 오히려 힘이 더 강해지죠.
수미야는 자신의 엉거트를 위해 차강사르 전과 가을에 각각 한 번씩 개인적 굿을 한다.
수미야는 월 별로 입는 12가지 무복을 가지고 있다. 블랙 샤먼들은 “옷의 도움”을 받아 하루에도 여러 번 굿을 할 수 있다. 블랙 샤먼들은 꼭 옷을 입어야만 한다. 하지만 화이트 샤먼인 수미야는 옷을 입지 않아도 고치고 ‘보는’ 일을 할 수 있다. 수미야가 일년에 두 번 하는 개인굿은 옷에 ‘모든 것’을 갖추고 한다. 그녀는 무복에 옛날부터 전해져오던 것이 많이 없어져간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3년동안 옷을 만들었고, 오른쪽 어깨에는 55개의 텡그리, 왼쪽 어깨에는 44개의 텡그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화이트 샤먼의 수는 얼마나 되죠?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할하(족)에서 나 한명뿐이라고 해요.
화이트 샤먼의 특징은 뭐죠?
의상을 입어야만 하는지 안입어도 좋은지의 차이에요. ‘옷(무복)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블랙 샤먼과 달리 나는 옷을 입지 않아도 ‘보고’ 고칠 수 있어요.
수미야는 “옐로(黃) 샤먼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들은 샤먼이라기보다는 라마승에 속한다는 것이다. 불교화된 황샤먼을 샤머니즘 계보에 포함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신의 스승중 한 명인 롭스타이는 어떤 샤먼이죠?
아마도 블랙 샤먼에 속할 거에요.
그렇다면 그에게 굿을 배운 당신도 블랙 샤먼의 일을 하는 거 아니에요?
난 배운 게 아니에요. 롭스타이는 나를 발전시켜준 것일 뿐이에요. 샤먼의 힘은 엉거트로부터 오는 것이지 누구에게 배웠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그녀는 지난 해 프랑스의 다큐멘타리 팀과 함께 헙스걸 아이막 다인데르흐 지역에 간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다인데르흐 노 샤먼이 가르쳐 준 동굴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샤먼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듯 했다. 그리고 로스타이의 사진도 볼 수 있었는데, 지난해 우리가 보았던 오른쪽 눈 밑의 상처가 거의 다 나아 있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차강노르에서 만났던 할머니 샤먼 나드미드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수미야가 샤먼이 되기 전의 무용수일 때 사진도 보았다.
수미야는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며, 우리의 연구가 잘 되고 인생이 행복하길 축복하며 헙스걸에서 가져온 조약돌과 아메리카 샤먼이 준 소라껍질, 그리고 푸른 하닥을 선물했다. 젊은 사람들이 샤머니즘을 연구한다니 무척 기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수미야와 헤어져 점심을 먹은 후 잉흐자르갈에게 전화했더니, 역시 오늘 굿이 취소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대신 내일 만치르 사원에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우리는 일정상 곤란하다고 대답하고 그녀가 말한 노 라마승을 만날 수 없겠냐고 물었더니 나담이 끝나야 만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담은 몽골인들에겐 완전한 휴식인가보다. 아무도 쉽게 만날 수 없다. 모두 “나담 후에”라는 말을 한다.
Manba Datsan Clinic and Training Center for Traditional Mongolian Medicine
우리는 ‘만바 다짠’ 사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 사원은 울란바타르 동부 지역 언덕에 위치해 있었다. 사원 입구 왼편에는 프레이어 휠을 모신 작은 집이 있었고, 경전이 들어있는 통마다 신자들의 이런저런 사연이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기억 등을 담은 애틋한 문구들이 따뜻한 햇살 속에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양편으로 병원 입원계처럼 병을 상담하는 공간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약을 조제해 나눠주는 곳이 있었다. 그 가운데로는 높은 천장의 법당이 있었다. 만바 다짠 사원은 전통적 사원과 병원의 기능을 함께 하고 있었다. 사원 중앙에 마이트레야(미륵) 그림을 그려놓은 것도 치유와 회복의 기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법당 앞 쪽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과 그를 위한 의자가 있었고, 그 앞에 가장 많은 지폐가 쌓여 있었다. 큰 사원들에 가면 달라이 라마를 위한 의자를 볼 수 있다. 그 ‘살아있는 붓다’가 이 생에서 한 번이라도 앉을 수 있을까. 비어 있는 자리가 달라이 라마의 지위를 더욱 부각시키는 것 같다.
유목민 여성 스레트르
사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우리는 사원 밖 계단에서 햇볕 아래 쉬고 있는 스레트르(51세)를 만났다. 그녀는 자프칸 아이막 출신으로 관절과 가슴이 아파 이곳에 입원했다가 내일 퇴원할 예정이었다. 이 사원에 온 이유는 울란바타르로 이사한 그녀의 아들이 이곳에서 경비 일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불교를 신앙한지 몇 년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사원에서 받는 치료는 스님들이 불경을 읽어주고, 점을 보고, 다음 의사들이 치료해주는 형식이다. 그녀는 살던 곳에서도 라마승으로부터 치료를 받았다. 그 라마승은 지하수를 주고, 불경을 읽어주었지만 치료되지는 않았다. 스님들이 불경을 외워주면 효험이 있는가 물어보니 그렇게 믿는다고 했다.
그녀는 고향에서는 가축 키우는 일을 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유목을 했다. 유목을 할 때는 아주 멀리 돌아다녔다. 자연에 대해 특별한 워십을 하는지 물어보니 그런 것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 옛날 사람들도 하지 않았냐고 다시 물으니 옛날 사람들은 했지만, 자신은 그런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녀의 가족은 이번 겨울에 한파로 가축들의 피해를 입었지만, 몇 마리나 죽었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고향의 풀의 상태는 많이 나빠졌다.그 이유는 해가 너무 강하고(가뭄), 해와 비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목을 하다 보면 좋은 풀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유목민들과 갈등하지는 않나요?
힘있는 사람들(가축이 많은 사람들 - 부자)은 그렇게 해.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혹시 그런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본 적이 있어요?
그런 적은 없어요.
유목이 무척 어려워진 것 같은데, 계속 하고 싶냐고 하니 어렵더라도 계속 할 것이며, 자식들에게도 계속 시킬 것이라고 했다.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 둘, 딸 하나를 가지고 있었고, 자기 부모는 불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시부모는 불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가축을 키우는 곳 주변에 산이 있어요?
많죠.
그런 산에 대해 사람들이 특별히 섬기는 경우는 없나요?
내가 알기로는 없어요.
어떤 신성한 장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없어요?
몰라. 하지만 고향의 라마승이 물, 땅에 나쁜 것이 있어서 내가 아프다고 말했어요. 스님은 내가 들어가지 않아야 할 곳을 들어갔다고 말했지요. 그래서 나는 유목을 다니면서 ‘신성한 곳’을 들어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긴 했어요. 그러나 그런 곳이 어딘지는 몰라요.
그녀는 몽골인의 5대 가축을 다 기른다. 가장 많은 것은 양이고, 가장 적은 것은 낙타이다.
지금 이 병원에는 여섯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퇴원해서 지금은 다섯 명이다. 병원에서 주는 음식은 괜찮다고 했다. 아줌마, 빨리 나아서 건강히 고향에 돌아가세요.
샤머니즘은 지속한다
지금까지 몽골인들과의 대화에서 ‘잊혀진 종교적 지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샤머니즘은 샤먼 중심의 종교이다. 생태학적 조건이 아무리 동일해도 역사적으로 샤먼이 ‘제거’된 지역에서는 샤머니즘의 지식이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결국 현대 몽골의 샤머니즘은 새로운 지식이다. 지금 샤머니즘을 신앙하는 몽골인들의 신앙은, 대부분 네오 샤먼들에 의해 교육된 형태이며, 네오 샤먼들이 전통에 대해 해석하는 내용에 의존한다. 현대 샤먼들이 과거의 샤머니즘적 지식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환상이다. 이들의 전통은 이들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선택은 필요에서 온다.
물론 이들의 엉거트가 70여년의 단절을 거쳐, 그 영험으로 샤먼을 선택하고, 가르치고, 파송했다면 내 판단은 전적으로 오류이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샤머니즘을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현대 몽골의 샤머니즘은 분명 현대인들에게 선택된 종교현상이다. 수미야, 사란다와, 잉흐자르갈, 촐란바타르, 르학바에르겐... 이들은 각기 스스로의 관점에서 전통을 재해석하고 있다.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전통을 서로에게 알려주고, 그것을 혼융하여 새로운 종교적 전통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점은 샤먼에서 신앙민들에게로 옮겨가야 한다. 이들은 다양하고 희한한 새로운 의례로 초대된다. 각각의 샤먼들이 ‘만든’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 주위를 돌거나, 혹은 인형을 태우거나, 기이한 갖가지 방법을 배운다 할지라도, 이들의 의도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현실의 불확실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의 질주이다. 그래서, 샤머니즘은 지속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