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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1 23:33


오늘과 내일의 분주함 사이에 잠시 '틈'이 생겨 안병무 선생님의 글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수유리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을 회상할 때면 후회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안병무 선생님의 강의를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조직신학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성서신학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거든요. 어느 날, 학교 복도를 걸어가다 환한 햇살 속에서 웃으며 강의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보며,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했는데, 그게 학교에서 뵌 마지막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그 후회가 더 깊어졌습니다. 그분의 육성을 조금 옮겨 봅니다.

"일전에 창밖에 포플러가 폭풍우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저 나무를 있게 한 저 위의 태양과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는 것은데 민중신학을 하는 동안 잊어버리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운동차원의 수평적인 것 말고 민중을 있게 한 그 뿌리가 뭐냐? 민중이 뭐냐고 하는 기본문제에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이래도 좋고 기라해도 좋은데, 기라 하면 쑥덕꿍하는데 서양사람에게서 제일 걸리는 것이 페르조나(persona)라는 개념, 이게 문제입니다. 성령이란 막힌 걸 유통하게 하는 것인데 그런데 인격화하면서, '성령님!' 하니까 딱 막혀버리는 거에요. ... 영(靈)이라는 것을 제발 기(氣)로 좀 대담하게 바꿔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인격주의를 좀 제거해요. 인격주의는 공간에 제약을 받아요. 분명히 예수는 그런 것 몰라요. 절대로 신약에 없어요. ..."

"어떻게 보면 예수 자신도 의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요렇게 하겠다하는 그런 이가 아니고--나는 노장적인 해석이 더 맞다고 보는데--그냥 흘러간 분이에요. 흘러갔어요. 하나님 뜻대로라는 의미가 더 맞아요. ... 민중에게 밀려갔다구요. 이니셔티브를 곡 취한 것이 아니고 그 민중과 더불어 산 거예요. 난 그런 의미에서 예수같은 분을 못봤어요. 아직까지 못 봤어요."

"한 삼 년 전 일본에 초청되어 아침저녁으로 네 번 민중신학을 강의했는데 때마침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사실상 말을 해서는 안될 상태였는데도 숨을 몰아가며 죽음의 위협을 의식하면서도 내 책임을 끝가지 다했다. 바로 그때 나는 분신자살이 연속 일어나는 학생들의 비통한 죽음들에 대한 충격을 가슴에 안고 이 민중사건 속에 바로 그리스도가 현존한다는 사실을 증언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했던 것이다. 마지막 말을 한 나는 마침내 울어버렸고 그들도 울어버렸다. 요 한 가지 사실만에서 민중신학이 강단의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 민중신학은 현장의 신학이다. 나에게는 나이와 건강의 이유로 현장이 점점 멀어지고 그 작업은 노동현장에 있는 젊은 신학도들에 의해 계승되어 가고 있다."

십 수년이 지나 한 세기가 바뀌었는데도, 선생님은 여전히 저 멀리 제 앞에 걸어가고 계시네요. 그분이 선물로 남겨주신 영감과 지혜를 지도(地圖)삼아 해방의 길을 걸어가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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